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범죄 가운데 많은 공분과 슬픔을 가져온 사건 중 하나가 화성연쇄 살인사건이다. 이는 1986~1991년 화성시 인근에서 13~71세 여성 10명이 살해된 사건이다. 공소시효 만료 때까지 범인을 검거하지 못했는데 최근 그 범인이 밝혀졌다. 비록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해도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그 내용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어 현재 수사 중이다.
이런 차에 화성연쇄살인 모방 범죄로 알려진 8번째 살인은 당시 경찰이 죄 없는 사람에게 누명을 씌워 범인으로 몰았다는 의혹이 나왔다. 범인으로 지목돼 형을 살았던 이도 자신이 살인하지 않았다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화성연쇄 살인사건 범인임을 자백한 이춘재도 8번째 살인은 자신이 저지른 것이라고 말해 재심 가능성이 높다. 재심이란 이미 확정된 판결에 대해 중대한 하자가 있음을 이유로 그 취소와 변경을 청구하여 다시 하는 재판을 말한다. 진범이 따로 있고 기존 재판이 고문 등으로 조작된 증거를 기초로 판단했음이 밝혀지면 재심이 개시될 것이다.
한편, 당사자 주장대로 당시 경찰관의 고문이 행해졌고 그 때문에 자백했으며 사건이 조작됐다면 이는 엄청난 사건이다. 우리는 살인이 발생하면 분노하고, 범인이 밝혀지지 않으면 끝까지 추적해 범인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살인죄에 대하여는 공소시효를 폐지했다. 반면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 고문하고 사건을 조작한 사람들에 대하여는 세월이 흘렀다는 이유로 제대로 처벌할 수 없다. 사건 당시 이런 사실이 밝혀지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진실이 밝혀지면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이 어려워진다. 가해자는 그동안 승진까지 하는 호사를 누리고 퇴직하더라도 아무런 형사적 처벌도 받지 않는다. 이것은 정의 실현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우리 법감정에 맞지 않는다. 개인의 살인죄에 대하여는 공소시효마저 폐지했는데 공권력을 이용해 무고한 사람을 살인자로 만든 사건에 대하여 아무 처벌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이는 공권력의 신뢰를 해치고 국가에도 많은 손해를 끼치는 것이기에 개인 범죄보다 죄질이 훨씬 나쁘다. 독재시절 대공사건처럼 권력의 압력으로 이뤄진 일이라면 하급자로서는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했다는 이유로 그나마 동정할 여지도 있지만, 출세 등 개인적 이유로 한 행동이라면 아무리 세월이 지났다 해도 처벌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최근 재심이 결정된 몇몇 사건을 보면 더욱더 그렇다. 1999년 전북 완주군에서 할머니가 살해된 ‘삼례 3인조 나라슈퍼 살인사건’은 당시 경찰이 정신지체 장애의 미성년자들에게, 2000년 전북 익산 ‘약산오거리 살인사건’은 15세 소년에게, 이번 화성연쇄 살인사건의 8번째 살인은 소아마비로 평소 걸음도 잘 걷지 못하는 장애인에게 각각 범인 누명을 씌운 것으로 밝혀졌거나 드러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우리가 보호해야 할 사회적 약자이다. 그런데도 국가나 사회가 보호는커녕 스스로를 변호하고 방어할 힘이 없다고 사건을 조작하여 그들에게 살인 누명을 씌워 경찰관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고 반면 죄 없는 사람에게는 이 사회를 원망하며 오랜 기간 교도소에서 고통 속에 지내게 했다. 인간으로서 차마 하지 못할 짓을 한 것이다.
이런 행위를 한 사람을 세월이 흘렀다고 처벌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것이 맞을까. 게다가 그들은 재심법정에서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뻔뻔함마저 보이고 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이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하여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공소시효가 만료돼 현재 법을 적용할 수 없다면 새로이 법을 제정하여 앞으로라도 엄중한 처벌을 하도록 해야 한다.
당시의 법원이나 검찰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검찰은 경찰의, 법원은 수사기관의 인권침해 방지를 위해 존재한다. 그럼에도 오히려 누명을 쓴 자들에게 제2, 제3의 피해를 주었다. 우리 사회가 문명화되고 선진국이 되는 것은 경제적으로 삶이 좀 나아졌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약자에게 가해지는 모든 부당함을 제거하고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챙기는 데 있다. 앞으로는 이러한 일이 절대로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관련자들을 처벌하는 법의 제정을 희망한다.
법무법인 국제 변호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