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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제발 조용히 관람하지 말아 주세요 /임규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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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11-17 19:31:26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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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서술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은 모두를 위한 것이고, 모든 문제는 모두의 문제다.” 밤은 깊었다. 20명 남짓한 사람은 제각각 어색한 시간을, 서성이고 읽고 대화하고 연기를 내뿜으며 축내고 있었다.

“제발 조용히 관람하지 말아 주세요. 저희가 준비한 술과 안주가 있으니 드시면서 좀 떠들썩하게 자유롭게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참여가 중요합니다. 역할을 분담해주시는 건데요. 노래도 따라 부르고 박수와 환호도 보내주시고. ‘취생몽사’는 그런 우리 기획 의도에 최적화된 프로그램입니다. 게다가 이 자리에는 영화 속 주연 배우들이 진짜로 와 계십니다.” 조원희 공동운영위원장의 말에는 진부함에 대한 감수성이 있었다. 우리는 키득거리며 조용히 설레었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주최 측이 마련한 관객 참여형 프로그램 ‘커뮤니티 비프’ 중 한밤부터 새벽까지 술과 안주를 즐기며 영화 3편을 몰아 보는 ‘취생몽사’ 프로그램 현장이었다. 지난 10월 8일 밤 10시, 사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한국 영화사의 한 획을 그은 폭망의 전설, 매트릭스와 홍콩느와르, 불교, 2류 감성, 감탄과 박장대소, 주연 배우와의 즉석 문답 그리고 시대를 앞서간 영화. ‘치코와 리타’, 경쾌하거나 혹은 아름다운 음악, 운명적 사랑 그리고 아모르 파티. ‘낮술’, 추위, 술의 괴로움 그리고 예정된 불길함을 인내해야 하는 답답함.

영화 세 편은 끝이 났다. 새벽 4시30분이었다. 제각각 어색했던 20여 명 사람의 말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마치 동지애로 묶인 사람들처럼. 예술은 영화가 아니라 말의 향연이 시작된 그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곤은 한 숨의 잠으로도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형식이 일구어낸 가능성의 예술에 대한 흥분은 오랜 시간 남을 것이란 예감 또한 틀리지 않았다.

1996년 BIFF는 출범했다. 부산의 기적이 시작된 해다. “산업혁명의 동력이 어느 구석에서도 멈춰 서지 않았고, 어느 길목에서도 병목 현상이 일어나지 않은 채 나라 전체가 환상적인 성장을 연출했습니다.”(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중에서)BIFF는 공백과 결핍 그리고 갈망을 국제영화제라는 틀로 훌륭히 만들어냈다. 유능한 추진 주체와 인적·물적 지원 그리고 성과와 자부심 등 멈춰 서지 않았고, 병목 현상도 없었다.

계절이 반소매 옷을 밀어낼 때면 우리는 남포동을 쏘다녔다. 영화의 바다에 빠졌고, 저마다 사연을 품은 채 맘을 말렸다. 문화의 불모지는 일거에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열정은 반짝거렸고, 자부심은 똬리를 텄다. 확고부동하고 아름다웠다. 기적은 기적의 연쇄를 낳았다.

부산영상위원회, 종합촬영소, 영화 후반작업장, 영화진흥위원회 그리고 영화소비도시에서 영화제도시로 다시 영화촬영도시로.

그러나 어느새 영화의 바다는 얕아지고 좁아졌다. 외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면서 내적으로도 뻗어 나가지 못하(파스칼 메르시어의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 중에서)는 영화제가 되었다.

부정은 쉽다. 어려운 것은 긍정이다. 단서를 찾고, 그 단서의 긍정으로부터 출발하는 것. 긍정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대전환의 요체다. 영화제를 위한 영화제, 멀어진 영화제에 저항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의 혐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역사는, 시간은 그리고 삶은 결국 사건이다. 우리는 말과 사진으로 남으려 하지만, 남는 것은 결국 사건이다. 부산에는 기적적인 사건이 있다. 그 기적이 과거에 완료된 사건으로 종결되어서는 안 된다. 멀어지는 영화제에 저항해야 한다. 그 저항의 단서가 ‘취생몽사’에 있었다. 함께 향유하는 축제의 가능성이, 적대와 냉대가 아닌 우정의 가능성이 바로 거기 있었다. 전환의 가능성은 형식에 있다. 형식은 내용 혹은 외부와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침묵은 무능이다.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말해져야 한다. 모든 것은 모두를 위한 것이고, 모든 문제는 모두의 문제다.

작가·도서출판 함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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