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 신라의 경주, 오백 년 조선의 한양 다음으로 오랫동안 한 나라의 도읍이었던 곳이 김해다. AD 42년에 건국해 532년 신라에 패망할 때까지 오백 년 가까이 유지된 금관가야의 도읍이었다.

평양은 241년간 고구려의 도읍이었고, 부여와 공주는 각각 122년, 64년간 백제의 도읍이었다. 요즘 흔히 말하는 ‘가야왕도 김해’는 이런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김해는 태생적으로 역사도시이지만, 지난 30년간 여러 공단을 유치하면서 공업을 축으로 도시가 발전했다. 이런 사정에 따라 역사도시의 모습이 흐려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러다가, 최근 친환경 슬로시티 정책으로 공업 중심 개발에 따른 상흔을 치유하고 역사와 문화를 축으로 새롭게 도시 발전을 도모하는 반전이 일어나 다행스럽다. 김해 시민 사이에도 자발적으로 역사를 찾고 연구하는 움직임이 뚜렷하게 나타나 반갑기 그지없다.

김해문화재단은 지난 3월 지역 역사와 문화를 소재로 창작한 가곡을 발굴하고 널리 보급하기 위해 ‘김해사랑가곡합창단’을 창단하고 단원 공개모집에 들어갔는데, 예상보다 많은 시민이 참여하여 그 열기에 놀랐다.

40대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여성 28명 남성 7명으로 구성된 합창단은 그로부터 7개월에 걸쳐 기초 발성 연습부터 하나하나 배우기 시작했다. 한국 전통 리듬을 이해하고 암보 연습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지만, 이들은 한 단계씩 실력을 키워나가 마침내 지난 20일 김해문화의전당 야외극장인 애두름마당에서 데뷔 무대를 갖는 기쁨을 누렸다.

“허황옥 공주는 아버지 꿈속에서 계시받은 임을 찾으려고~ 에헤헤헤~ 수만 리 험난한 뱃길로 동방에 가야국 찾아왔네.” 합창단은 김해의 역사와 전통을 소재로 한 가곡 ‘김해아리랑’을 길 건너 가야 유적지와 대화하며 노래 부르는 듯했다.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합창단이 첫 번째 공연에서 예상 밖의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자 애두름마당에 모인 200여 명 관객은 환호했다.

김해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해 시민이 최근 결성한 ‘김해역사연구회’의 활동 또한 예사롭지 않다. 이들은 김해읍지 김해지리지 등 사료를 함께 연구하고, 역사 유적 현장을 답사하고 있다. 구지봉 고인돌, 대성동 고인돌, 상동면 대감리 분청사기 가마터, 백파선(1560~1656,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김해 출신의 여성 도공으로 일본 도자기의 어머니로 불림) 유적지, 진영 단감 시배지 등 역사 현장을 찾아 조사하고 보고서를 써 전문 역사학자가 미처 관심 갖지 못한 현장연구의 공백을 메우고 있다.

이들은 분산성 유적지에 올라 아름다운 일몰을 보며 그 옛날 조상이 누렸을 일몰에 감탄하고, 고지도 속에 있는 옛길을 어렵게 찾아내 직접 걸어 보면서 선인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감회에 젖기도 한다. 김해역사연구회 서정현 회장은 “김해는 발길 닿는 곳마다 문화재”라면서 “사료에 근거한 현장답사를 통해 실태를 파악하고 자료를 남겨 김해 시민의 자존감과 역사의식을 드높이는 데 앞장서고 있다”고 말했다.

‘김해시민이여, 가야를 노래하라’를 표어로 지난 9월 7개 민간 합창단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가야시민합창제는 잠자는 가야를 일깨웠다. 합창단이 ‘아름다운 김해로’ ‘수로왕릉’ ‘삼차풍범’ ‘수로왕릉의 가을’ ‘김해팔경가’ 등 역사를 소재로 만든 많은 가곡을 노래해 공연장을 찾은 시민의 박수 갈채를 받았다. 포용과 공존의 가야사 정신이 합창 선율을 타고 시민에게 전승되는 것 같았다.

역사 속 사건을 소재로 한 연극도 곧 무대에 올라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김해 극단 이루마는 임진왜란 때 조선 최초로 김해에서 일어난 의병장 사충신(송빈 김득기 이대형 류식)을 다룬 연극 작품을 만들었다. 4명의 충신은 관군의 지원 없이 백성을 이끌고 왜군 침략에 맞서 김해성을 지키다 장렬하게 순절한 인물이다. 29일 개막해 사흘간 진영한빛도서관 공연장에서 열리는 이 연극 공연은 김해를 빛낸 역사 인물인 사충신을 중심으로 하나 된 백성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낸다.

가야 왕도 500년, 가야 건국 2000년. 많은 역사 자산을 어떻게 인식하고 활용하는가는 순전히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몫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E H 카가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밝힌 것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와 통찰력과 정체성을 우리는 역사에서 얻을 수 있다.

역사를 찾는 오늘의 시민이 내일의 새 역사를 써 나가고 있다. ‘오래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역사문화도시 김해시민이 내딛는 발걸음 위로 오래된 햇살이 오늘도 새롭게 비치고 있다.

김해문화재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