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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지금은 노동조합을 만들 시간 /남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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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10-22 19:30:59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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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장관 임명을 두고 논란이 한참 일어나고 있을 때 필자는 지인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조국 가족을 보면서 아이들한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고.

자신은 자녀들에게 조국 아들딸이 가졌던 교육·입시 기회를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초엘리트 사회 내에서 일반화된 ‘아빠·엄마 찬스’를 자기 자식들은 누리게 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대학에 근무하는 교원이었다.

그 대학교원은 조국 가족은 하는데 왜 나는 못 하는가 하는 생각 때문에 자괴감이 들었을 터이다. 그와 내가 동등한 시민인데 왜 조국의 아이는 엄마찬스를 쓸 수 있고 자신의 아들은 그럴 수 없느냐는 것이 그의 불만이다. 그러나 냉정히 말해 그와 조국은 동등한 시민권을 가졌지만 계급이 다르다. 계급이 다르면 삶의 방식이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다. 교육 기회뿐만 아니라 삶의 기회도 다르다. 조국 씨의 딸이 세계시민으로 자라났다면 나의 아이들은 ‘지방의 평민’으로 자라나고 있을 뿐이다. 그게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라는 계급사회의 냉정한 현실이다.

한국 사회만 그런가? 그럴 리가 있나! 2014년 한국어로 번역돼 한국에서도 주목받은 토마 피케티의 저작 ‘21세기 자본’을 보면 불평등은 선진국 후진국 할 것 없이 모든 국가를 관통한다. 피케티에 따르면 오늘날 서구 상층 중간계급은 자식에게 학습능력을 ‘상속’시킴으로써 엘리트 대학 입학 기회를 제공하고 아파트 한 채를 물려줌으로써 계급을 세습시킨다. 세상은 이렇게 출발선이 다르고, 결과도 다르다. 시험이라는 공정한 ‘절차’는 이렇게 다른 출발선과 다른 결과를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정당화하는 수단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유난히 평등의식이 강한 사회다. 때로는 강한 평등의식이 사회를 개혁할 동력이자 시민을 동원하는 수단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과도한 평등의식은 개인적 불행감을 초래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이 준거로 삼는 집단은 ‘상층 중간’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함에서 비롯되는 좌절감은 개인적 불행을 키운다. 한국인의 삶의 지표는 크게 개선되었음에도 주관적 삶의 만족도, 자존감, 미래에 대한 긍정적 기대감은 크게 낮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와 같은 비교에서 비롯된다. 필자는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평등하게’라는 구호를 믿지 않는다. 오늘날 공정한 경쟁을 통해 더 좋은 일자리를 얻은 상층 중간계급 출신은 임금도 더 많이 받고 자산 축적의 기회도 많다. 공정한 경쟁이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수 시민이 상층 중간계급으로 진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계층 상승 경로가 닫힌 것은 시장경제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의 작동 원리에 따른 결과이다.

대안은 없을까? 평범한 시민으로 살면서도 자존감을 갖는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게 실질적 과제다. 일반 시민이 자존감을 가지려면 어떠해야 할까?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상층계급과 자신이 같아야 한다는 ‘강한 평등의식’을 버리는 것이다. ‘엘리트들은 엘리트이고 우리는 우리다’는 의식이 필요하다. 이것을 마르크스는 계급의식이라고 했다. 나랑 비슷하게 사는 사람들끼리 어울리고, 저녁에 간단하게 술도 마시고, 서로 격려하는 사회가 되면 좋다. 이것은 최소한의 공동체적 삶을 복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를 위한 첫 과제는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좋아하는 이웃-벗들과 어울리는 삶은 노동시간이 줄어들 때 가능하다. 돈이 적게 드는 만남의 공간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가장 좋은 수단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직장 문화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투쟁만 하는 곳이 아니라 직장에서 좋은 벗 즉 동지를 사귀는 공간이다. 동료애가 있으면 조국 따위는 부럽지 않다.

그것도 안 된다면 아파트 공동체라도 만들어야 한다. 그럭저럭 아이들도 함께 키우고. 노동시간 단축, 노동조합 건설, 아파트 공동체 만들기가 경쟁 사회에서 평범한 시민이 행복해지는 지름길이다. 어떤 국립대 교수가 등재지 논문에 자기 아들을 저자로 올려놓으면 그걸 부러워 할 게 아니라 ‘별 ××놈 다 보겠네’라고 조롱할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한국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위’를 보며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자존감을 키우는 작은 실천이다.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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