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과 전문의가 되고 나서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모집하는 국제협력 의사를 지원한 적이 있다. 이왕 해외에서 봉사할 바에야 아프리카에 한번 가보자고 마음을 먹게 되어 에티오피아를 지원하였다.

그림 서상균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시립병원에서 2년4개월간 활동하였는데, 처음 병원을 보았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100년 이상 된 건물에 낡고 빛바랜 문짝, 결코 깨끗해 보이지 않는 침대와 이불을 덮고 누워있던 환자들 그리고 이따금 파리가 날아다니는 수술실.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우리나라의 1950년대나 60년대로 회귀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곳이고, 그 나라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오는 병원이었으니….

의료 수준이 낮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의료 수준이 낮다고 해서 그 나라의 의료진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에티오피아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느낀 것은 그 나라 환경과 수준에 맞는 최선의 치료를 그분들은 시행하고 있었으며, 불행히도 내가 한국의 최첨단 시설에서 배운 수술 기법들은 사용할 형편이 전혀 아니었다는 것이다.

에티오피아는 바다가 없는 내륙국이므로 요오드 섭취의 부족으로 인한 갑상선 비대증의 빈도가 꽤 높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갑상선 항진증으로 갑상선이 커진 정도가 아니라 보통 야구공만 한 혹을 목에 달고 있는 경우라 수술이 불가피하다. 이런 수술, 아니 어떤 수술을 하더라도 수술용 소모품을 고려해야 하는 한국 의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에서는 이런 수술을 하면서 바늘이 달린 실을 2개나 3개 이하로 사용하면서 수술을 시행하였다. 가능한 한 물자를 아껴서 다음 사람에게도 수술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던 동료 의사를 한국으로 6개월간 연수를 보내줄 수 있었는데, 다녀와서 그는 나에게 재미있는 소감을 밝혔다. 한국은 물자를 아껴 쓸 줄 너무 모른다고.

서혜부 탈장 수술의 경우 당연시되고 이미 정립되어 있는 수술 방식은 약해진 복벽을 보강하기 위한 그물망을 대는 것이다. 과거 그물망을 적용하기 전에는 약해진 복벽을 끌어당겨 탄탄하게 만들어 주는 방식의 수술을 했는데, 수술 후 통증이 심하고 재발률도 그물망을 대었을 때보다 높다는 단점이 있다. 에티오피아의 경우 이 그물망이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그물망 50개 정도를 구매해 가지고 갔다. 같은 병원에 근무하던 외과 의사들은 그물망을 보고 매우 기뻐하였고, 이 귀중한 물자를 낭비하지 말고, 우선 탈장 환자가 왔을 때는 예전의 수술 방식을 사용하고, 재발한 환자의 경우에만 그물망을 쓰자고 제안하였다. 물론 나는 동의하였고, 막상 재발한 환자에서 그물망을 쓸 때에도 한 개의 그물망을 두 개로 나누어서 그물망 하나로 두 사람에게 사용하여 효율을 극대화하였다.

2년4개월 동안 에티오피아에서 외과 의사로 근무하면서 느낀 것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외과 의사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고, 사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의료 수준이 개선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최신 의료 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최신 의료를 수행할 수 있게 해주는 경제적인 여건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내가 지금 몸담고 있는 장기이식 분야는 현대의학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이식과 같은 최첨단 의료는 돈이 없으면 시도해볼 수조차 없다. 수술할 때 쓰는 실의 숫자를 세면서, 또 그물망 한 개를 두 개로 나누어 쓰는 곳에서 장기이식은 정말 그림의 떡과 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고귀한 인간의 목숨은 돈으로 따질 수 없다. 물론 동의한다. 그러나 그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엄청난 비용이 든다는 것, 이것도 역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삶의 역설이 아니겠는가.

양산부산대병원 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