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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매일 실패하지만 매일 씁니다 /이정임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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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09-29 19:25:31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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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다. 성인이 되고 이십 년 만에 처음으로 일이 많이 들어왔다. 반백수로 살던 내게 이 사건은 행복하고도 슬픈 일이다. 누군가 나의 쓸모를 알아봐 주고 불러주는 일은 감사하니까 행복하고, 들어온 일에는 대개 시간제한이 있으므로 원고 쓰기에 공 들일 시간이 줄어들어 슬프다. 체력은 달리는데 일은 계속 있고, 이 와중에 들여다봐야 되는 일상의 문제가 도처에 숨어 있으니 난감하다. 문제는 내가 이 상황을 어느 정도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즐기는 이유는 많지만 가장 작은 이유를 들자면, 바쁘면 정말 싫은 설거지를 하지 않고도 뻔뻔하게 굴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즐기는 것과 별개로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하다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면 원고 마감을 알리는 문자가 와 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워드 프로그램을 실행시킨다. 하얀색 막막함을 마주한다. 높고도 두꺼운 벽과도 같다. 몇 글자를 쓰며 나는 예감한다. ‘오늘도 실패다.’

글쓰기는 참 신기한 일이다. 머릿속에서 구상하는 내 글은 정말 재미있다. 내용을 상상하고 장면을 구성하는 동안에는 조앤 롤링, 하루키, 한강의 글도 부럽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막상 글자로 찍어내고 보면 참 시시하다.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요, 그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어 보여 나쁘다. 그럴 때면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따위 글을 써내다니, 머리가 잘못한 거니, 손가락이 잘못한 거니?’ 머리와 손가락이 서로를 가리키며 말한다. 머리도 손가락도 결국 ‘나’라는 것을…. 일상을 유지하고 들어온 일을 잘 해내고 글쓰기를 완성하려 매일 애쓰지만, 이 애씀은 노력과 별개로 매일 실패하기 일쑤다.

한 달 전이었다. 원고를 쓰기 위해 집 근처 도서관을 찾았다. 쓰다가 잘 풀리지 않아서 쓰는 일은 잠시 접어두고 책을 읽기로 했다. 그즈음 한 독후감 대회의 심사를 맡아서 그 대회의 대상 수상작을 찾아 읽었다. 재미있는 책을 읽는 동안은 세상이 고요해진다. 책장 펼치는 소리, 의자 끄는 소리, 누군가의 잡담 소리는 사라지고 오직 책의 인물들과 책을 읽는 내가 나누는 대화소리만 남는다. 이 대화는 깔깔거리는 웃음 소리거나 서러워서 우는 소리거나 화가 나서 투덜거리는 소리거나 가만히 어깨를 쓸어주며 위로하는 소리로 나온다. 고개를 들어 도서관 자료실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각자 따로 읽지만 그곳의 모두, 조용하지만 치열한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이지만 모두 한 가지 일에 몰두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순식간에 동지가 된다. 그래, 나는 이런 것을 사랑했지. 그래서 글을 쓰지. 나는 그곳에서 아무도 전한 적 없는 응원을 받는다. 그리고 아무도 알아차릴 리 없는 응원을 보낸다.

사실 내겐 바쁘지 않던 시절의 글쓰기도 매일 실패였다. 등단 이후 지금까지 글을 쓰는 일은 계속 어렵다. 글 쓰는 일만 그럴까. 일도, 사랑도 어렵다. 매일 애를 쓰고, 쉽지 않아 고군분투하고, 끝내 실패하고,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다시 시도한다. 왜 그러냐고 묻는다면, 애를 쓰면 글을 쓰기만 하면 내일은 좀 더 나아지기 때문이다. 오늘 실패보다 내일의 실패는 조금 더 나은 실패가 된다. 나아진 실패의 맛은 꽤 중독성이 강하다.

도서관 폐관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거의 다 빠져나갔다. 그때 근처에 서 있던 사서가 내게 조용히 인사했다. 조심히 가고 도서관에 자주 오시라고. 나는 웃으며 인사하고 도서관을 나왔다. 그는 모를 것이다. 인사를 들었을 때 내 마음이 얼마나 가벼워졌는지를. 내일도 도서관에서 글을 쓰며 머리를 쥐어뜯겠지만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뜯게 되지 않을까. 어떤 식으로든 응원받는 글쓰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도 나는 애쓴다. 그리고 실패한다. 매일 이 과정을 거친다. 그러다 발견할 것이다, 더 나은 삶의 형태를. 아까도 말했지만 이 과정의 맛은 중독성이 강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다. 컴퓨터 워드 프로그램을 실행시킨다. 하얀색 막막함에 대고 이렇게 쓰기 시작한다.

‘매일 실패하지만 매일 씁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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