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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수산칼럼] ‘굴기’에 맞선 조선해양산업 안녕한가 /이제명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9-24 19:32:37
  •  |  본지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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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기’는 ‘몸을 일으키고, 성공하여 이름을 떨친다’는 뜻이지만, 중국이 국가 차원에서 자주 사용하면서 최근 다른 의미로 쓰인다. ‘잠시 주춤했으나, 특정 분야에서 다시 최고가 되겠다’는 의지가 포함된 정치 공학적 단어가 되었고 자동차 굴기, 반도체 굴기, 해상 굴기 등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일본 역시 반도체 산업을 대상으로 전자산업 굴기를 선언했다.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것과도 맥이 닿아 있다.

굴기를 시장경제에 적용하자면, 시장을 되찾거나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조선해양산업에서 시장 장악과 기술력 모두 우리나라에 패배를 인정해야만 했던 일본, 글로벌 조선시장을 놓고 우리와 수위를 겨루는 중국이 조선해양 굴기를 선언하고 나선다면 그들이 내세울 무기가 무엇인지 자못 궁금하다. 이런 관점에서 조선해양 산업의 시장을 좀 더 들여다보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패전 추축국에 대한 조치로 군수 선박 건조를 금지당하게 된다. 당시는 전 세계적으로 전쟁 탓에 붕괴한 경제를 복구하기 위해 막대한 규모의 산업 물량이 필요한 시기였고, 이를 감당하기 위한 선박의 대량 건조도 필요했다. 기회를 놓치지 않은 일본은 군함 건조 체계를 민수용 선박 건조 체계로 재빨리 전환했고, 조선 산업을 기반으로 삼아 피폐해진 국가경제를 재건하는 데 나섰다. 항공모함 건조까지 가능했던 기술력이 있었으니, 정책적 결정을 실행에 옮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 후 50여 년간 일본은 민수용 선박 시장에서 최강국의 지위를 누렸다. 국방비만 1000조 원을 써 ‘천조국’이라고도 불리는 미국은 막대한 국방 예산을 해군력 유지에 투자하며, 예나 지금이나 군함 건조 능력에서 세계 최강이다.

이렇듯 군수와 민수의 조선해양산업 시장은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양분된 셈이다. 미국 중국 일본은 군수용과 민수용을 합한 자국용 선박 수요만으로도 조선해양산업과 시장을 유지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전체 건조 선박의 80% 이상을 수출한다. 상대가 수입을 중단하면 산업이 존속될 수 없는 구조다. 자국의 경제와 산업 이익을 위해 보호무역을 강화하는 최근의 세계 경제 양상을 볼 때 우리나라 조선해양산업의 구조가 건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자국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상대국의 경쟁 업종을 무너뜨리려는 공격적 전략이 통용된다면 ‘기술만 있으면 이길 수 있다’는 과거의 경제 논리가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세계 시장에서 기술과 정보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국력이 약할 때 겪었던 현실적 사례가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군함 양무호는 1903년 대한제국 전체 국방 예산의 30% 가까이 지불하면서 일본으로부터 수입한 군함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영국산 중고 화물선에 함포 몇 개 얹은 수준이었다. 국가 간에 벌어진 명백한 사기극이었고, 무지로부터 비롯된 역사적 아픔이었으며, 국력과 글로벌 시장경제의 밀접한 연관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 준 반면교사였다.

우리 시장마저 내어 줄 것인지 아니면 남의 시장까지 가져올 것인지의 차이점은 시장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예측 그리고 준비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무역 마찰, 미중 간 관세·환율 전쟁 등을 보면 세계는 이미 새로운 형태의 전쟁을 치르는 느낌이다. 총칼을 들지 않아도 국가의 존망이 걸린 다툼의 정도는 훨씬 더 정교하고 격렬해지고 있다.

우리의 조선해양산업은 해군력을 지탱하는 방위산업과 에너지 수급 및 산업 물류를 담당하는 해운업을 뒷받침하며 제조업계의 맏형 역할까지 하고 있다. 그리고 압도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최고의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무역 기조가 자국 우선주의로 수렴되는 현재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미래의 시장 안정성을 장담하기는 쉽지 않다. 최고에 있을 때 위기를 준비해야 하는 이유이다. 장보고의 청해진,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 이순신의 거북선. 우리 역사 속에는 위기 극복이나 난국 돌파와 궤를 같이하는 ‘해양 유전자’가 있었고 이것이 발현될 때마다 우리는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21세기 세계 최고 경쟁력을 자랑하는 조선해양산업을 보유하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타의에 의해서는’ 흔들리지 않을 조선해양산업 선도국의 지위를 유지할 전략 발굴과 운용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철저한 시장분석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반도 국가라는 지정학적 장점과 세계 최고 수준의 산업기술이 있다. 세계 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면 세계의 중심에 한반도가 보인다.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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