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직업을 가졌기에 항상 프로젝트에 대한 결과물이 나오면 꽤 많은 인터뷰 자리를 가졌던 듯하다. 인터뷰의 질문들도 작업의 종류나 시기에 따라 상당히 다양했는데 생각해보면 언제나 빠지지 않고 가장 많았던 질문은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요?’라는 내용이었다.

어쩌면 음악을 만들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장 궁금한 것은 그 음악 자체보다 그 음악이 시작되기 직전의 순간에 대한 호기심 아닐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을 정도로. 지금의 시대뿐 아니라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음악인을 포함한 창작자들에게 던져지는 가장 대중적이며 보편적인 질문이기도 하니까.

돌이켜 보면 꽤 오랫동안 이 내용의 질문이 가장 어렵고 대답하기 곤란했었다.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나 이유가 ‘영감’이라는 단어로 규정하기에는 너무 가볍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의 무게와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영감이라는 뉘앙스가 가진 ‘계기’나 ‘자극’과 같은 찰나에 관한 언어적 이미지가 무척 불편하게 다가온 듯하다. ‘영감’이란 말로 설명될 수 없을 만큼 그 작업에 대한 긴 시행착오와 고민의 시간 그리고 항상 그만큼의 애정이 뒤섞여 있기에 이런 단편적 질문이 그 작업을 너무 오히려 쉽게 바라보도록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무척 들었던 듯하다.

또 한 가지는 과연 창작자는 영감이 존재해야 정말 창조를 할 수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이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영감이 과연 창작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라는 의문 역시도 함께. 멋진 영감으로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것은 정말 이상적인 창작의 과정이 아닐 수 없지만 현실적으로 창작자가 그 영감을 위해 언제까지 기다릴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영감보다 더 객관적이고 창작의 출발이 합리적 판단이었다고 생각될 만큼의 이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적어도 창작자라면 그 정도 최소한의 책임과 무게감이 언제나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영감이라는 단어는 그 시절 나는 나를 포함한 모든 창작자의 우아한 로망 같은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최근에 여전히 같은 질문을 받은 인터뷰가 있었다. 나는 타일을 보러 다니는 것이 가장 큰 영감이 되고 있다고 얘기했고 동시에 예전보다 이 영감에 관한 질문이 편해져 스스로도 신기해했다.

실제로 나는 이번 여름의 여가 시간에 타일을 보러 다녔다. 때로는 혼자 유명 타일 가게를 방문하여 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가족과 함께 타일 구경하러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흔히 화장실에 쓰이는 마감재로 생각했던 타일이 훌륭한 디자이너들의 손길을 거치며 회화를 보는 듯한 쾌감을 주었고 그 재미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떤 타일 가게에서는 마치 뉴욕이나 베를린의 현대 미술관처럼 다른 장르의 상주 작가들의 작업 공간이 주어져 전시들이 펼쳐지기도 하는가 하면 여러 형태의 협업을 통해 보다 큰 전시장에서 설치 미술을 감상하듯 타일을 감상할 수 있었는데 그 시각적 즐거움이 무척 컸다.

여러 일정으로 여름 휴가를 결국 포기해야 했던 나에게 상당히 값진 시간들이었고 아주 오래전 매년 여러 도시의 현대미술관을 둘러 보며 나만의 기록을 남겨두었던 것만큼이나 삶의 가까운 곳에서 그런 감흥을 느낄 수 있어서 무척 흥미진진했다.

시내의 한 타일 가게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창작에 있어 영감이란 것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반대로 나 역시 영감이란 것에 대해 창작자로서 너무 많은 책임감을 부여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영감에 관한 것이 창작자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자주 던져지는 질문이었으면 좋겠다. ‘당신의 삶에서 영감을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이 우리 스스로에게 낯설지 않은 질문임과 동시에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흔하게 던져질 수 있는 질문이 되었으면 좋겠다.

시간은 더 빠르게 흘러가고, 같은 삶을 매일 반복해야 우리 일상이 이어지고 있지만, 우리 스스로에게 ‘지금 당신의 영감은 무엇 인가요?’라는 내용만큼 우리가 향하고 있는 삶의 지점과 바람을 생생하게 확인시켜줄 수 있는 질문이 또 있을까.

그리고 그 대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저마다 다른 자신의 경험과 삶의 애정은 어쩌면 현재의 우리가 매일 확인해야만 하는 가장 값진 가치이지 않을까.

성신여대 현대실용음악학과 교수·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