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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칼럼] 귀농 귀어 귀촌에도 균형발전 없는 나라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9-05 20:06:50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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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매표가 시작되었다. 사분오열되었던 행렬 사이에는 또 한 번 난파선을 방불케 하는 요동이 일었다. 아우성이 들렸다. 쓰러지는 비명, 저항하는 외마디 소리, 이렇게 아수라장이 될 때 경찰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호각으로 대열을 정비했다. 그래도 엉망진창이었다. 이번에는 길다란 장대 몇 개가 등장했다. 경찰은 그 장대를 사정없이 휘둘렀다. 그 장대가 B29처럼 저공비행하면 모두가 주저앉았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씩 매표구로 기다시피 했다 (…) 저 어둠 속 길게 뻗힌 대열 그 후미로 남산이 보이고 남산 위로 음력 팔월 열나흘 밤 만월이 45도 높이로 떠 있었다’. 허세욱 시인의 수필 ‘장대 위로 돋는 달’의 일부다. 1960년대 추석 전 날 고향 가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 서울역 앞 광장에 난민처럼 모인 귀성객을 묘사하고 있다. 이제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 같지만, 귀성과 귀경이란 말처럼 아직 우리는 그 아련한 추억의 현실적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질서를 잡기 위해 기다란 장대를 휘둘러 사람들을 주저앉히는 경찰은 지금 없다. 하지만 올 추석에도 고향으로 ‘내려가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사람들의 행렬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림 서상균
이 뿌리 깊은 서울·수도권 중심의 사회 문화 정치 경제 구조는 변함이 없다. 서울·수도권을 지향하며 사람들이 그리는 ‘욕망의 지도’ 또한 예전 그대로다. 서울로 ‘올라간다’는 이 차별적 언어 표현만큼이나 바뀐 게 없다. 아니 더욱 심화되고 있다. 우선 숫자적으로 그렇다. 1960년대 수도권 인구는 전체의 20% 정도였다. 지금은 50%에 이른다.

공간적으로 수도권이라는 의미도 많이 바뀌었다. 대중의 의식 속에 수도권의 공간은 점점 확장되어 이미 천안·아산에 이르렀고 세종시까지도 포함하려 하고 있다. 수도권 과밀 문제를 해소하려고 서울로부터 멀리(?) 떨어진 세종에 행정복합도시를 만들었는데 이 또한 수도권에 붙어버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양의 차원뿐만 아니라 질의 차원에서도 수도권으로의 편중은 나라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 예로부터 신체의 건강은 균형이며 그것이 무너질 때 병이 난다고 했듯이 나라의 건강도 마찬가지다. 경제와 고용의 질적 차이는 ‘지방에는 좋은 직장이 없어요’라는 말로 대변되고, 교육의 질적 차이는 ‘지방 대학’이라는 말로 대변된다. 지방 대학이라는 말은 안타깝게도 ‘지방에 소재하는 대학’이라는 뜻 이외의 다른 차별적 의미를 담고 있다. 문화생활을 즐기는 데에도 수도권과 지방은 차이가 나고, 의료 혜택의 차이는 말할 것도 없다.

이상은 그래도 큰 그림이라서 익히 알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중요해서 다시 강조하는 것일 뿐이다. 세태를 미시적 시선으로 보면 나라 곳곳에서 미묘한 불균형을 관찰할 수 있다. 최근 농어촌으로 돌아가는 인구에 대한 기사가 통계 수치와 함께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귀농 귀어 귀촌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소식은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상징성을 은근히 품고 있어서 뭔가 인간적이고 낭만적인 아우라를 풍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지나치게 실리적이라서 또 다른 씁쓸함을 맛보게 한다.

우선 귀농 귀어 귀촌의 통계도 역시 서울 중심으로 작성된다. 다른 도시에서 근처 농촌이나 어촌으로 가는 인구에 대한 통계는 관심 밖이다. 우리나라에서 도농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서울과 나머지 지역의 관계로 틀 지워져 있다. 어쨌든 최근 5년 동안 서울을 떠나 농촌, 어촌, 전원생활로 돌아간 인구가 꾸준히 늘어나 연평균 7만~8만 명 수준이라고 한다. 적은 수이지만 농어촌 인구가 늘어난다니 좋은 일이다. 하지만 모든 통계가 그렇듯이 그것의 진실은 표기 숫자에 있지 않고 해석에 있다.
우선 이런 인구의 95% 이상이 귀촌 인구이다. 귀농과 귀어의 통계가 무색해지는 지점이다. 그 귀촌 인구 가운데서 50% 이상이 경기도로, 10% 정도가 충남으로 간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귀촌 인구의 상당수가 서울 근교에 붙어사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음을 뜻한다. 귀농도 경기와 충남으로 30% 이상 간다. 귀농 인구도 상당수 서울 근처에 머문다.

귀어는 아직 활성화되지 않아서 그 숫자가 아주 적다. 하지만 부산 울산 경남의 입장에서는 귀어도 관심거리다. 그런데 아쉽게도 국토 활용의 ‘서울·수도권 신드롬’은 여기서도 관찰된다. 귀어 인구의 50% 이상이 충남으로 가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멀리 가고 싶지 않은 것이다. 서울에서 경북으로 귀농한 인구가 소수라도 통계에 잡히지만, ‘바닷가’ 지역의 대명사인 부산 경남의 어촌으로 귀어한 인구는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다.

2000년대 초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균형발전을 가장 중요한 정책 목표로 삼고 온갖 노력을 기울인 지도 20년이 다 되어 간다. 현재까지 존속하는 ‘국가균형발전위원회’도 그때 만들었다. 노 전 대통령은 ‘국가균형발전은 국민통합의 전략’이라고 했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를 줄여야만 나라가 사회적 갈등 없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균형발전정책은 당시 정부의 모든 정책의 근간이었으며 세세한 시책에까지 녹아들도록 했다. 그러면서도 그가 우려했던 것은 그런 정책 기조가 흔들리고 언제든 과거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강한 압력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우려는 지난 15년 동안 현실이 되었다. 그것은 나라의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고 사람들의 의식 문제이기도 하다.

거시적 국가 정책에서 미시적 지역 정책으로 눈을 돌려 보자. 부울경은 자연적으로 산 바다 들을 고루 갖춘 천혜의 지역이다. 귀농 귀어 귀촌의 메카가 될 수 있는 곳이다. 이런 조건에 ‘문화적 매력 포인트’를 부여하면 의외의 효과를 낼 수도 있다. 누가 그런 데 관심이나 있겠냐고 할지 모른다. 황당한 말 그만 하고, 꿈 깨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변화도 ‘그 어떤 것에 대한 꿈’을 갖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래야만 꿈을 세밀히 구체화하려는 노력이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나라 사람 모두 한가위 보름달을 좀 더 편안히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

철학자·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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