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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럼] 키니네의 좌충우돌 세계사 /박지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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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09-02 20:17:01
  •  |  본지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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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와중이었던 1942년 1월, 일본은 천연자원이 풍부한 네덜란드령 동인도(지금의 인도네시아)를 점령한다. 석유와 천연고무를 확보한 일본은 이곳 특산인 키나 나무를 연합국에 대한 수출 금지 목록에 올린다. 키나 나무는 말라리아의 유일한 치료제인 키니네의 원료로, 이곳에서 전 세계 물량의 80~90%를 생산했다. 일본의 이러한 조치는 치료약을 무기화한 반인륜적인 조치로 당장 아시아와 태평양 정글에서 전투를 해야 하는 연합군에게는 치명타가 되었다.
그림 서상균
오랜 세월 말라리아는 인류를 지독하게 괴롭혔다. 치료약이 등장한 것은 17세기로 남아메리카 인디오가 먹었던 키나 나무의 껍질이었다. 인디오의 비약을 알게 된 예수회 수사들을 통해 유럽으로 건네졌다.

나중에 가장 우수한 약효를 내는 키나 나무 품종이 밝혀지고 그 씨앗이 영국과 네덜란드 정부로 건네지면서 두 나라는 각각 안데스와 생육 환경이 비슷한 인도, 동인도 식민지에서 나무를 키워본다. 특히 네덜란드는 자바섬에서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곳이 세계 키니네 시장을 과점했다. 이제 일본의 금수 조치로 연합군의 자연산 키니네 확보는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합성이라도 해야지.

미국은 잘 몰랐지만 합성 키니네는 이미 독일이 개발했다. 독일 역시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자연산 키니네 수급에 어려움을 겪자 자기의 장기인 화학산업을 통해 1920년대에 이미 합성약을 만들어냈다. 그뿐만 아니라 독일 제약사의 미국 자회사를 통해 이미 미국으로도 보낸 상태였다. 하지만 자연산 키니네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던 미국은 합성약은 안중에도 없었을 따름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미군은 독일군 포로의 수중에 있던 독일제 합성 키니네를 확보한 후 이를 복제 생산해 미군에 보급한다. 미국에 있던 독일 제약사의 자회사 연구실에 이미 그 약이 있었다는 걸 미국은 까맣게 몰랐다(첫 번째로 어두운 등잔 밑).

그런데 뜻밖의 문제가 생겼다. 어렵게 만든 약이었지만 정작 군인들은 이 약을 먹으려 들지 않았다. 자연산 키니네를 먹는 일본이 방송 공작을 통해 합성약을 먹으면 성 불구자가 된다는 가짜 뉴스를 퍼트렸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뉴기니에 상륙한 미군 95%가 말라리아에 걸려 앓아누웠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20년 만에 미군은 다시 베트남 정글 속에서 말라리아를 만난다. 그런데 그 무렵 말라리아 치료제들은 내성 탓에 거의 쓸모가 없었다. 그래서 포기하나? 아니지, 미군 주도로 새로운 약을 개발해서 내놓는다(1971년).

전선 너머 월맹군에게도 말라리아는 골칫거리였지만 미국이 동병상련이라는 이유로 신약을 넘겨줄 리는 없었다. 월맹은 우방인 중국에 도움을 청했다. 중국은 개똥쑥(칭하오)에서 유효성분을 추출했다(1972년). 이것이 40년이 지난 2015년 중국 과학자 투유유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아르테미시닌이다. 이 약은 기존 약보다 효과가 좋았고 가격도 저렴했다. 나중에 미국이 중국제 치료제의 존재를 알게 되고는 땅을 쳤을 것 같다. 개똥쑥은 중국에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수도 워싱턴을 흐르는 포토맥 강둑에 가면 지천으로 널려 있는 식물이었기 때문이다(두 번째로 어두운 등잔 밑).

키니네를 둘러싼 열강의 각축사를 돌아보면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얻는다. 개똥(쑥)도 약에 쓸 수 있으니 약용식물을 허투루 여기지 말 것. 그리고 금수조치당한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다는 것. 대안은 의외로 등잔 밑에 있을 수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도전과 위기를 통해 강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것.

올여름 우리는 물러 설 수 없는 역사의 전환점에 섰다. 우리는 미래를 바꾸어 놓을 선택을 해야 하고, 행동해야 한다. 먼 훗날 후손은 지금의 우리를 어떻게 평가할까? 우리는 어떤 평가를 받고 싶은가? 그 질문 속에 답이 보인다.

신경과전문의·메디컬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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