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동물은 자신 보금자리를 손수 만든다. 자기가 쉴 수 있는 곳, 자기가 치유되고 보호될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 그 속에서 하루의 힘겨움을 달랜다.

긴장하며 달렸을 시간, 경계하며 공포에 떨었을 순간, 새끼를 먹이기 위해 전전긍긍했을 어려움을 그 보금자리에 풀어놓고 평안한 몸과 마음으로 잦아든다.

그들은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온도와 감촉, 자기가 안심할 수 있는 위치와 시간에 대해 알고 있다. 그들은 휴식을 위해 다른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서비스나 제품, 콘텐츠 같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에게 글쓰기란 그런 보금자리 만들기와 비슷한 데가 있다고 느낀다. 세상에는 나를 위로해주겠다고 건네는 참으로 많은 손길이 있다. 심리치유 에세이, 하루 동안 쌓인 수고로움을 말하는 다정한 음악들, 편안한 분위기와 공간의 카페 같은 곳들,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켜주는 다양한 영상이나 작품이 위로를 전해준다.

그런 것들이 실제로 마음을 달래주곤 하는 때가 있다. 특히, 하루에 듣는 몇 편의 음악, 종종 자유롭게 쉴 수 있는 카페, 위로가 되는 문장들이 있고, 그런 것들이 삶에 작은 안식처들이 되어준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주는 마음의 도움이라는 건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하루의 수고로움이 백이라면, 그런 위안이 달래줄 수 있는 범위는 이삼십 정도랄까?

결국 나머지 칠팔십 정도에서는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위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끼고는 한다. 이건 아마도 개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타인의 손길에 의해 백의 위안을 다 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를 달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다. 그럴 때 내게 가장 큰 힘이 되고 위안이 되며 치유가 되는 것이 글쓰기이다. 내가 쓴 글이 나를 위로한다. 내가 글을 쓰는 시간이 위안의 시간이 된다.

얼마 전 출간한 ‘행복이 거기 있다, 한 점 의심도 없이’의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 자리에서 떠오른 비유가 있다.

한강물을 펌프로 끄집어내어 정수필터를 거쳐 깨끗한 물이 되는 과정을 영상으로 찍은 광고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샤워기에 필터를 설치하여 녹물을 걸러낼 수 있다는 식이다.

그런데 나에게 글쓰기란 꼭 그런 정수필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겪는 일상에는 어떤 힘겨움, 어려움, 부정적인 감정들과 같은 불순물이 쌓인다. 삶의 녹물이라 해도 좋겠다.

그런 녹은 적절한 시점에 풀어주거나 제거해주지 않으면, 결국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매일 쌓여서 언젠가 삶을 무겁게 끌고 내려앉게 하는 듯하다.

글을 쓰는 일은 그렇게 하루에 내 몸에 쌓인 중금속 같은 것들을 걸러낸다. 부정적인 감정, 나쁜 생각, 힘겨운 마음 같은 것을 억누르거나 억압하고, 그리하여 더 쌓이도록 만드는 게 아니라, 그런 것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걸러지고, 더 나은 마음으로 내일 하루를, 오늘 밤을, 이 순간을 대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

글쓰기는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을 더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더 깊이 생각하고 싶은 부분에 대해 찬찬히 풀어보고, 오늘 하루 내가 겪은 어려움들을 해명하거나, 앞으로 또 삶과 관계를 대해야 할 태도에 대해 고민하게 해준다.

그렇게 하루 중 잠시라도 멈추어볼 수 있는 시간이 글쓰는 시간이고, 이 작은 시간이 내 삶의 아주 큰 부분을 구해내는 것 같다.

작은 동물들이 자기에게 꼭 맞는 보금자리를 만들듯이, 나를 견디게 해줄 수 있는, 나의 방향이 되어줄 수 있는 글을 자아내고자 한다. 내 삶의 녹물을 정화하듯이, 내 삶이 보다 투명해질 수 있도록 삶을 걸러내고자 한다. 정신 없이 흘러가는 삶 속에서, 나의 삶이 여기 있다는 걸 생생하게 확인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 그렇게 나는 매일 글쓰기에게 구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보금자리를 자아내는 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문화평론가·‘분노사회’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