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의 지하 생활자와 ‘알라딘’의 주인공 알라딘은 같은 부류이다. 그러나 가진 것도 희망도 없었던 그들의 행로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기생충’의 지하 생활자에게는 술탄이 될 재스민 공주도 램프도 없다. 암울하지만 현실적이다.

전쟁을 일으켜 인면수심의 범죄를 저질러온 일본처럼, 참회도 없이 모함과 겁박을 일삼는 파렴치한의 민낯을 이성적으로 감내하기는 어렵다. 약자의 일상이 우울과 빈핍으로 인한 음습한 범죄의 유혹에 휘둘리는 것은 무시와 무례 때문이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인간의 삶이 그래 왔듯이 ‘기생충’의 지하 생활자가 지상의 화려한 삶을 누리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처럼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출구 없는 현실 때문에 성자와도 같은 인성이 구비되지 않고서는 가지지 못한 자의 박탈감으로부터 빠져나오기가 힘겹다.

영화감독들은 대단히 직설적으로 그들의 정치적 의지를 표출시킨다. ‘알라딘’은 희망적인 결말이긴 하지만, 재스민이라는 공주의 이름으로 재스민 혁명을 연상케 하고, 여자 술탄을 통해 성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공주가 왕이 되어야만 행복한 삶의 주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약자 또한 강자가 되어야만 비극적인 현실을 극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알라딘’은 마치 환각제처럼 갑갑했던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준다. 대신 삶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끌지는 않는다.

‘기생충’을 본 관객들은 대부분 우울해한다. 어떤 이는 “내 일상이 더 비참하게 느껴졌다. 어머니가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반지하방에서 나와 지상의 내 집을 꿈꾸는 일은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날 가능성만큼이나 희박하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은 희망 없는 현실을 낱낱이 목격해야 하는 것에 불편해하고, 화사하게만 살았던 또 다른 이들은 봉변을 당한 듯 불쾌해한다. 그러나 출구 없는 어려움에 처할수록 환부를 직시함으로써 버려야 할 것을 버리고 취해야 할 것을 취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암울한 현실의 고통을 견뎌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IMF 외환위기 때는 결혼반지까지 내어서 금 모으기를 했지만, 그 돈을 몽땅 ‘타이타닉’을 보는 데에 써버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초호화유람선의 침몰이라는 재난 앞에서 보여주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사랑과 희생에 이입되어서였다. 노숙자가 넘쳐났고, 구치소와 고아원이 포화상태가 되는 배신과 파산의 세월이었기에 현실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사랑과 헌신적인 배려 앞에서 통곡하는 일탈을 감행했던 것이다.

줄도산과 대량해고의 쓰나미 속에서 가장 먼저 쓸려나야 했던 이들은 여성이었다. 그 무렵 믹스형 커피 제품이 출시된 것은 커피 탈 여성이 없어진 현실적 필요 때문이었다. 여성의 퇴출은 연이은 가장들의 실직 사태에 흔적 없이 묻혔다. 몇 년 후 인력이 필요해 그들이 다시 불려갔지만, 계약직으로서만 가능했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증가했다고 하지만 8할 이상이 계약직이 된 데는 IMF 사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때도 부자들은 환차익을 보느라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부족한 달러를 모으기 위해 자동차 2부제까지 했지만 여러 대의 자동차를 가졌던 그들은 도심 대로에서 씽씽 달리며 ‘이대로 영원히’를 외쳤다. 그래서 ‘기생충’을 보고도 지하 생활자의 아픔을 모르는 그들은 ‘전율이 느껴지는 통쾌함과 재미’만을 느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양극화와 부조리한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고, 범죄자에게 합당한 벌을 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에 기여할 1만4000건이 넘는 법안은 지금도 국회에서 잠만 자고 있다. 이전투구에만 공을 들이는 국회의원들 때문에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국민의 열망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인도영화 ‘블랙’에서는 시각과 청각, 언어장애를 가진 아이가 수화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는 장님’이라 말한다. 깨달음은 촛불처럼 어두운 방안을 따스한 빛으로 채운다. ‘아프리카 난민 아이보다 얼마나 행복한가’라는 문제에 ‘남의 불행을 보고 내가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같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답한 어느 초등학생처럼 공존을 위한 절실한 깨달음이 없이는 암흑 속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지하생활자든 지상의 황제든 저마다의 자리에서 세상을 따뜻하게 밝힐 마음의 촛불을 켜야 할 때이다.

소설가·동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