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감성터치] 자두의 계절이 돌아왔다 /김정화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7-14 19:08:50
  •  |  본지 26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일 년을 기다렸다가 먹는 과일이 있다. 딸기의 계절을 거쳐 수박과 포도의 배릿함을 가로지르고 오는 어질어질한 향이다. 풋여름 노을빛을 닮은 색, 한 입 베어 물면 코끝이 찌릿하고 눈허리가 시어온다. 그 과육은 혹독했던 입덧의 기억까지 소환시키는 힘을 지녔다. 자두의 계절이 왔다.

우리나라 자두는 유월 중순이면 붉은 물이 들기 시작한다. 나는 해마다 달력의 하짓날에 동그라미를 쳐놓고 첫 자두인 대석 자두를 기다린다. 대석 자두는 알이 작고 딴딴한데 아삭하고 새콤달콤하여 내겐 이것이 진정한 자두의 맛이다. 하지만 출하 시기가 짧아 때를 놓쳐버리면 다시 한 해를 기다려야 하는 아쉬움이 따른다.

첫 자두 맛을 넘기면 속살이 연한 후무사 자두가 입을 즐겁게 해 준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이때쯤 시장에 가면 자두가 종류별로 나온다. 겉은 퍼렇고 속이 붉은 것과 겉은 벌겋고 속이 노란 것, 겉도 속도 시뻘건 살덩이 같은 과육들이 허연 분을 바르고 물감을 잔뜩 덮어쓴 것같이 소쿠리 위에 앉아 있다. 이 풍경을 상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심지어 먹기도 전에 자두의 계절이 후다닥 지나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앞선다. 그러나 추석 즈음 수확하는 추희 자두를 떠올리고는 한시름 놓는다.

내가 어릴 때는 자두를 풍개라 부르며 깨물고 다녔다. 사과나 복숭아보다 맛이 박하고 모양이 작아 한낱 재채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서 ‘에추’라고도 불렀다. 그때만 해도 경상도 사람들은 개량 자두와 토종 풍개를 다른 품종으로 쳤다. 감과 고욤의 차이처럼 서양에서 건너온 사과와 아시아 종인 능금처럼 구분하였다. 내친김에 자두의 사투리를 찾아보니 서른 개도 넘는다. 충청도에서는 ‘옹애’라 하고 강릉에서는 ‘꽤’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며 ‘추리’라는 이름도 남아 있다. 그러니 노인들이 자두를 무어라 하는지 들어 보면 고향이 짐작될 정도이다.

무위자연을 주창한 노자는 자두나무 아래에서 태어났으며 춘향전에서는 이도령 어머니가 자두꽃을 받는 태몽을 꾸었다고 나온다. 평생 자두만 그려서 자두 화가라는 별호가 붙은 화백의 그림을 본 적도 있다. 문인들도 앞다투어 자두 예찬을 한다. 앙드레 지드는 자두를 보고도 감동할 수 있는 것이 작가적 재능이라 일렀으며 김훈 소설가는 자두의 향기는 퍼지기보다는 찌른다고 탄복했다. ‘자두나무 정거장’을 쓴 시인과 ‘슬픔을 맛본 사람만이 자두 맛을 안다’고 쓴 작가도 자두의 계절에는 뉘 못지않게 행복할 것이리라.

자두는 한자리에 앉아 입술에 자두색이 배고 양손에 단물이 흐르도록 먹어야 한다. 자두를 한 바가지 먹은 날은 자두 향 바람이 일고 자둣빛 석양이 내려 세상이 붉게 물든다. 자두를 먹으면서 자두꽃을 상상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한때는 나라의 주인 꽃이었다. 자두가 오얏나무 열매이니 오얏꽃이라고도 불리며 한자로는 이화(李花)라고 쓴다. 옛시조 ‘이화에 월백하고’에 등장하는 배꽃 이화(梨花)와는 다르다. 조선 왕실의 성씨가 자두 이씨였으므로 자두꽃이 왕실의 문장화로 쓰인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뒤안길로 이화 문양이 사라졌듯이 표준어에 밀려 오얏과 풍개라는 이름도 자취를 감춰 간다. 그러기에 자두가 익을 때 도시락을 싸서 자두밭으로 소풍 간다는 이웃 나라의 풍속이 더욱 부럽기만 하다.

한 자루의 자두를 매달고도 의연했던 나무. 푸른 그늘을 뿜어내던 꽃자리에서 이리도 달큼한 열매가 맺힐 수 있다는 사실에 경탄한다. 부드러운 살 속에 박힌 단단한 씨앗을 경배한다. 이 얼마나 거룩한 일인가. 인간은 꽃과 열매를 소중히 여기지만 나무는 뿌리나 줄기를 귀히 여길 것이다. 스스로 꽃을 떨어뜨리고 열매를 버리기도 하지만 꽃 필 자리를 마련해 두는 일도 나무는 잊지 않는다. 때로는 한 그루 나무가 훌륭한 스승이 되기도 한다.

올해도 무당벌레와 사마귀와 거미를 함께 키운다는 자두원 농부가 택배를 보내왔다. 물기를 털어낸 붉은 열매를 와짝 깨문다. 온몸을 몸서리치게 하는 맛이다. 누구에게나 한 시절은 있는 법. 자두 맛같이 짜릿한 순간은 이제 다 지나갔을까.

평론가·수필가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많이 본 뉴스RSS

  1. 1만덕동은 억울하다, 코로나 낙인
  2. 2해운대 재송동 재건축 붐에 집값 들썩
  3. 3박관용 전 국회의장도 “부산시장감 없다”…국민의힘 새판짜기 힘 실리나
  4. 4광안리 물놀이객보다 펭수보러 온 사람 더 많았네
  5. 5최원준의 음식 사람 <20> 독도새우
  6. 6가덕 신공항에 광역연합 성패 달렸다
  7. 7검체채취 공무원도 감염…해뜨락병원發 8명 추가
  8. 8동네가수 팀장, 사주 봐주는 형사…‘재주꾼 부산경찰’ 재능 기부 화제
  9. 9야당 “조국 딸 왜 입학취소 않나” 부산대 “법원 판결나면 결정”
  10. 10오늘의 운세- 2020년 10월 21일(음력 9월 5일)
  1. 1야당 “조국 딸 왜 입학취소 않나” 부산대 “법원 판결나면 결정”
  2. 2박관용 전 국회의장도 “부산시장감 없다”…국민의힘 새판짜기 힘 실리나
  3. 3한국형 구축함 사업 두고 경남·울산 의원 국감 충돌
  4. 4청와대·여당 “추미애 지휘권 발동 적절한 조치” 야당 “비위 덮으려는 것…秋장관 경질하라”
  5. 5여야, 공수처 출범 줄다리기 여전
  6. 6가덕 신공항에 광역연합 성패 달렸다
  7. 7김해신공항 검증 유권해석 최소 한 달 걸릴듯
  8. 8균형발전…초광역 지방정부가 이끈다 <4> 하나의 경제체제로
  9. 9위기의 김종인 리더십…PK중진발 야당 조기 전대론 부상
  10. 10김종인 ‘부산 발언’ 놓고 시장 후보 갑론을박
  1. 1부산 e스포츠 상설경기장에 ‘듀오백 의자’ 설치
  2. 2고사 위기 여객선사, 긴급자금 지원 고작 4건
  3. 3금융·증시 동향
  4. 4예비창업자라면 오세요…‘메이커 스페이스’ 오픈
  5. 5힘내라 부울경 소·부·장 <6> 대영하이켐
  6. 6주가지수- 2020년 10월 20일
  7. 7부산에 ‘미스터트롯’ 뜬다…롯데백화점 발빠른 굿즈 마케팅
  8. 8부산 올해 1만 가구 남았는데…전매제한에 분양 연기 속출
  9. 9국무조정실이 이례적 직접 감사…부진경자청에 무슨 일?
  10. 10르노 ‘트리플 역주행(생산·내수·수출 모두 감소)’…車산업 부산만 홀로 침체
  1. 1양산시 전 국장, 여당 지역수석부위원장 선임에 ‘뒷말’
  2. 2 다른 도시 주거정책 살펴보니
  3. 3미국 주택바우처 시행…스웨덴 자녀 많으면 주거면적 확대 허용
  4. 4“경남- 전남 해상 경계, 등거리 중간선 적용을”
  5. 5악취 내뿜던 양산 혈수천, 생태하천 변신 시동
  6. 6정부 2호 지역상생 일자리 밀양에 뜬다
  7. 7광안리 물놀이객보다 펭수보러 온 사람 더 많았네
  8. 8오늘의 날씨- 2020년 10월 21일
  9. 9인도 이어 차도까지 점령…대형마트 무개념 공사
  10. 10도시철도 양산선 사송·북정역에 환승센터
  1. 1쳤다하면 땅볼…거인 ‘병살타 1위’ 불명예 쓰나
  2. 2무관의 ‘대상 1위’ 최혜진, 휴엔케어오픈서 첫 승 정조준
  3. 3‘영혼의 단짝’ 손흥민-케인, 유로파리그 본선 출격
  4. 4양산 동원로얄CC, 접근성·시설·코스 3박자 갖춰…포근한 지형 덕에 사계절 내내 굿 샷
  5. 5기장 동원로얄CC, 일광산 아름다운 능선 따라 9개 개성 있는 코스…다양한 부대시설도
  6. 6부산CC, 역사 간직한 회원제 클럽…짧은 듯 난이도 높은 설계로 집중력 배가
  7. 721일 월드시리즈 개막 “다저스가 우세 전망”
  8. 8통영 동원로얄CC, 한려수도 향해 호쾌한 장타…각기 다른 18개 홀 라운드 깊이 더해
  9. 9‘기록제조기’ 손흥민, 홈구장 최단 45초 만에 벼락골
  10. 10“탬파베이 나와” LA 다저스 극적 월드시리즈 진출
균형발전…초광역 지방정부가 이끈다
하나의 경제체제로
균형발전…초광역 지방정부가 이끈다
‘특별연합’이란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일몰제가 준 생명 같은 교훈
2020년 지금 우리에겐 취사선택권이 없다
기고 [전체보기]
일조권 분쟁 예방 위한 시뮬레이션 도입을 /박진수
젊은이여 ‘내 인생을 바꿀 책’ 만나라 /전호환
기자수첩 [전체보기]
울산 주상복합 화재가 남긴 교훈 /방종근
사람(人)이 보이면 일단 멈춤 /김미희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닫힌 사회와 그 친구들
삼각 교수대와 황금 요강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북은 소, 얼후는 구렁이가죽?
융합 우리를 아름답게 하리라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지역균형 뉴딜’에 대한 우려 /이석주
세검정 지하철과 동남권 관문공항 /정옥재
도청도설 [전체보기]
문학정신
옥중 폭로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가을의 시간을 맞으며
이주의 시대와 문학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맛있는 밥을 위한 쌀 선택 기준
며느리는 돌아오지 않는다
사설 [전체보기]
수출 중기 여신 지원마저 수도권 집중 문제 있다
탈원전 정책 타격 불가피한 월성1호기 감사 결과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경제·복지의 지속가능성과 정치의 역할
정치권으로 확산되는 기본소득 포퓰리즘
이수훈 칼럼 [전체보기]
남중국해 갈등과 우리의 대응
기후위기 그리고 그린 뉴딜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왕을 감동시킨 소박한 감사
인내와 고통으로 탄생한 명작
이홍 칼럼 [전체보기]
젊은 세대에게 찬사를 보낸다
코로나 아이러니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올해도 말잔치로 끝나나
나훈아와 추석 민심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브람스를 좋아 하세요?
명반과 곡명에 대한 편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구분과 화합, 와인과 사회
와인으로 느끼는 자부심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
이인상의 소나무 그림
  • entech2020
  • 맘편한 부산
  • 제9회 국제신문 골프대회
  • 국제 어린이 경제 아카데미
  • 유콘서트
  • 2020 어린이 극지해양 아카데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