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에는 전국 개봉을 진행한 배급 작품이 한 편도 없었지만 필자와 팀원들은 꽤나 분주한 봄을 보냈다. 지난 5월, 어쩔 수 없이 처음으로 단독 사무실을 마련하게 되었다. 예비사회적기업인 우리가 더는 창작실에 있을 수 없게 된 탓이다. 그 때문에 언제든 동종업계 친구들을 만날 수 있으며 정수기, 전자레인지 등 갖가지 편의가 제공되는 곳을 뒤로하고 야생으로 나와야 했다.

그 당시의 구구절절한 상황상 사무실을 구할 시간이 하루 이틀 정도밖에 없었는데, 그 짧은 기간 우리는 자본사회에서 책정하는 씨네소파의 실제 가치를 두 발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우리에게 허락된 곳은 높은 곳. 바다와 평지와 최대한 멀리 떨어진 ‘산’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언제부턴가 중심이 된) 센텀의 가장자리로, 도시의 외곽으로 떠나오게 됐다.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좀 더 어릴 때는 귀신을 무서워했었다. 저렴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싶어, 마냥 싼 집도 그땐 꺼렸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비바람 몰아치던 이삿날에도, 새 사무실의 어두운 복도에서도 귀신 생각은 나지 않는다. 근처 대학에서 5000원짜리 ‘학식’을 먹다가 8000원짜리 밥을 사 먹으며 월세, 전기세, 수도요금 등 뭐 하나 에누리 없이 꼬박꼬박 내야 하는 것을 생각하니 오히려 그에게 따져 물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고. 지금 같은 자본주의 시대에, 유령이라 할지라도 무임승차는 안 될 말이다.

사실 약간은 그의 등장을 기다리기도 한 것 같다. 쌍수를 들고 월세를 나눠 낼 룸메이트의 등장을 반기고픈 심정이었다. 이사 올 당시 우리는 살림살이 하나 없는 벌거숭이 상태였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그동안은 좀 뭐랄까 유령뿐만 아니라 타인의 방문 자체를 두려워했던 것 같다. 아직 씨네소파의 자아가 갖춰지지 않았는데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이 무서웠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들을 이유도 없이 나는 빨간 모자 이야기에 나오는 늑대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휘둘리고 잡아먹힐 것 같다고 생각했다.

또, 처음 시작할 때 우린 네 명이나 되었고 각기 다른 역량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끼리만 있어도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벽을 치고 있었던 이유는 그런 자만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비바람이 세차게 치던 이삿날, 새 사무실로 향하는 높은 언덕과 함께 문 하나가 열렸다.

유은정 감독의 ‘밤의 문이 열린다’는 그런 때에 우리에게 다가왔다. 또 혼자서만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작년 씨네보배 프로그램으로 인연을 맺었던 서울의 선배 배급사인 무브먼트에서 함께 배급해보지 않겠냐고 손을 내밀었다.

주변과 단절한 채 혼자 살아가는 주인공 ‘혜정(한해인)’이 원인도 모른 채 유령이 되어 과거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는 이야기이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고 하던 유은정 감독의 어느 인터뷰처럼 우리의 새 사무실은 철저하게 주변으로부터 만들어졌다. 커피포트부터 책상까지 어느 것 하나 누군가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는 집들이를 통해 살림살이를 끌어모았다. 염치도 없이.

유령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어제와 주변을 돌아보는 주인공 ‘혜정’처럼, 이 높은 곳에 올라와 홀로 되어서야 비로소 외로움 깨닫는다. 외로웠음을 깨닫는다. 그동안은 미처 알지 못했던, 도움을 요청하거나 도움 주려 했던 수많은 손길에 미안했다. 아무도 나를 흔들지 못하게 꽁꽁 싸매고 있던 시절이 지나고 주변을 받아들인다고 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되레 혼자 있을 때 우리는 정말로 사라지고 만다.

자, 이제 다시 하반기부터 배급할 영화가 산더미다. 대놓고 홍보할 일이 많아질 것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독자에게 염치없는 손을 내민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작으로서 무브먼트와 씨네소파, 부산과 서울 그리고 그들 모두의 친구가 힘을 합쳐 진행하는 첫 번째 배급 프로젝트인 ‘밤의 문이 열린다’가 다음 달 14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문은 부산의 ‘끄티’에서 가장 먼저 열린다.

씨네소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