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에 근무하기는 하지만 병원의 소재지는 ~리로 끝나는 ‘시골’이다. 물론 신도시로 개발되어 전혀 시골 같은 느낌은 없으나 환자분들을 볼 때 가끔 여기가 시골은 시골이구나 하고 느낄 때가 있다.
수술이 잘 끝나 외래로 올 때 본인이 직접 농사지은 마늘이나 감자, 버섯을 가져오기도 한다. 청탁금지법이 발효된 이후 사례를 받을 수 없다고 누누이 이야기해도 ‘그럼 이렇게 무겁게 가져왔는데 어쩌냐’며, ‘여기에 놔두고 가겠다’고 한다. 그러면 나도 어쩔 수 없이 버리고 간 것은 주워가도 되지 않겠느냐고 자신을 설득한 뒤 간호사나 다른 의사들과 나눠 가져가기도 한다.

이런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장기 이식 환자는 주로 이 병원의 제일 위층의 병동에 입원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내가 환자를 살피러 내려가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문이 열리면, 드물지 않게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타고 있는 경우가 있다. 내리지도 않고. “안 내리세요?”라고 물어보면, 그냥 쑥스럽게 웃으며 내려간다고 한다. 그냥 문이 열리니까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 모르고 탄 것이다. 여기 어르신들은 순박하기도 하고 또 좋게 보면 여유가 있다고 느껴졌다. 서울의 큰 병원에 있을 때에는 좀처럼 보지 못했던 장면이다.

또 하나 느끼는 것은 어느 부위에 암이 생겨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일 때 긴 시간 상담을 진행하고 모든 검사까지 끝냈는데, 서울의 유명한, 이른바 ‘빅 4’ 병원으로 가는 분이 있다. 이런 분은 주로 젊은 사람이다. 서울 유명 병원의 그 누구와 견주어도 나의 수술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단 한 번의 기회인데 더 나은 치료를 받겠다고 가는 분의 마음을 헤아려 보면 그것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런데 정작 그런 젊은 보호자의 어머니나 아버지에 해당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자신의 병명도 잘 모르는 채, 자식의 손에 이끌려 우리 병원에 와서 수술까지 하게 된다. 그럴 때 자식들은 부모님이 병명을 모르도록 해달라고 신신당부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 부모님 간병을 고려하더라도 자식들 입장에서는 본인이 사는 곳 근처에서 수술하는 게 낫기 때문일 것이다. 의사 입장에서는 모든 환자를 똑같이 대해야 하겠지만, 이런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마음이 더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한참 어린 나를 보고도 “원장님” “박사님” 하고 부른다. 원장도, 박사도 아닌 나는 멋쩍기는 하지만 “원장도, 박사도 아닌데요”라고 버릇없게 대꾸하지는 못한다. 아직 어르신들이 있고, 그래도 나는 상급 종합병원에 근무하고 있어 내가 원하는 근무 형태를 유지할 수 있지만, 대한민국의 의료는 서울의 대형병원 위주로 점점 쏠리고 있다는 게 실감 난다.

KTX나 SRT를 타면 두 시간이면 갈 수 있는데 시골에 있는 병원에서 진료를 봐야 할 당위성은 없다. 그러나 시골에 있는 병원이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보다 실력이나 서비스가 못하지 않다면 가까운 병원에서 진료를 받지 않을 이유도 없을 것이다. 여기에는 지방에 있는 의료진이 노력해야 할 부분도 분명히 있다. 자신의 실력을 갈고닦아 데 국내, 아니 전 세계 누구와도 견주어도 밀리지 않겠다는 결의와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정부의 노력 역시 중요하다. 2019년 대한민국의 의료는, 의료 전달체계가 무너진 상황에서 보장성 강화만 하려는 쪽으로 가다 보니, 자본과 인력을 충분히 가진 서울의 대형병원으로만 환자가 쏠리게 된 면이 있다. 이런 상황이 장기간 지속되고 더욱 악화된다면 우리나라 전체의 의료 환경에도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가 우리나라 의료 전달체계를 조금이라도 바로잡을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게 시골 외과의사의 바람이다.

양산부산대병원 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