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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연예인 신상 변화에 휘둘리는 지방 /이경식

지자체 ‘날개 없는 추락’ 앞다퉈 드라마 관광사업, 국토불균형발전정책 탓…수도권주의 극복이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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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 추락에는 날개가 없다. 최근 배우 송중기·송혜교 부부의 파경으로 큰 타격을 받은 강원도 태백시에서 그 표본을 본다. 태백시는 관내에서 촬영한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인기를 끌자 2016년부터 이를 활용한 관광사업에 매진했다. 5억여 원을 들여 드라마 세트장을 복원하고, 송·송 커플의 키스 동상이 들어선 공원을 조성해 태백커플축제를 열었다. 270억 원을 더 쏟아부어 사업 규모를 확대하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인구 4만여 명의 소도시, 태백시의 명운이 걸린 프로젝트다.

하지만 송·송 커플의 이혼으로 모든 계획이 무산돼 버렸다. 태백시가 연예인의 신상 변화에 휘둘리는 신세로 전락한 건 석탄산업의 몰락과 역대 정부의 뿌리 깊은 국토불균형발전정책 때문이다. 태백시는 1980년대 말 광산이 줄줄이 문을 닫으면서 인구가 60% 이상 줄어드는 등 바닥 모를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재정자립도가 17.5%에 불과해 지방세 수입으로 공무원 인건비조차 해결하지 못한다. 태백시가 드라마 세트장 유치와 연예인 관련 이벤트사업에 매달리는 이유다.

이런 처지에 놓인 지자체는 태백시만이 아니다. 행정안전부의 ‘2019년 지자체 재정지표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체 지자체 243곳 중 지방세 수입으로 인건비를 충당하지 못하는 지자체가 124곳(51%)이나 된다. 경남 합천군의 영상테마파크, 전남 완도군의 청해진포구 세트장, 전북 부안군의 석불산영상랜드 등등. 이들 지자체의 다수가 먹고살기 위해 앞다퉈 드라마 세트장 관광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성공 확률은 매우 낮다. 운영비도 못 건지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부나비처럼 달려드는 현실이 씁쓸하다.

지방이 이 지경에 이른 건 9할이 정부 책임이다. 수도권에 치우친 국가 경영이 그 원흉이다. 부산~헬싱키 항공노선 신설 문제가 그 전형의 하나다. 핀란드 항공사 핀에어와 국토교통부, 부산시가 2014년부터 100여 차례 협의했지만, 국토부는 끝내 김해공항에 이 노선을 신설토록 허용하지 않았다. 인천공항을 세계적인 허브공항으로 만들려면 미주 유럽 등 장거리 노선은 인천공항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아까운 돈과 시간을 허비하며 인천공항을 이용해야 하는 남부지방 주민들의 고충은 ‘1국 1허브공항’ 정책의 불가피한 희생양이라는 논리다. 지난달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핀란드에서 부산~헬싱키 노선 신설에 합의한 뒤 나온 조선일보의 ‘느닷없는 부산~헬싱키 노선…국내 항공사들 뿔났다’ 기사는 그 연장 선상에 있다.
수도권 중심주의는 지난 5월 서울시가 발표한 ‘서울·지방 상생 사업’에 대한 반응에서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서울시는 앞으로 4년간 2403억 원을 투자해 서울 청년들의 지방 창업과 취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서울이 대한민국 수도로서 오늘날 세계 톱도시 위상을 갖게 된 것은 서울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다. 제가 농사꾼 부모님의 헌신적 노력으로 서울시장이 됐듯이 지방의 희생과 헌신으로 서울이 이런 위상을 갖게 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밝힌 사업 취지는 자명한 진실이다. 지방의 수도권 상품 소비와 인재 공급이 없었다면 어찌 지금의 수도권이 있겠는가.

하지만 수도권의 반응은 싸늘하다. “창업이나 취업을 하도록 지방으로 실업 청년들을 보내는 건 하등 경제적 가치가 없다” “세금을 풀어 청년 실업을 해소하겠다는 것인데, 표(票)퓰리즘이며 매표행위나 다름없다” 등등. 약속한 듯이 비난 일색이다. “일자리는 지방 변두리에서 생기는 게 아니다”며 ‘지방=변두리’ 차별의식도 공공연하게 내비친다. 갑(수도권)이 을(지방)을 대하는 듯하다. 이러니 어찌 “지방은 내부 식민지”라는 지적이 나오지 않겠는가.

사실, 수도권 중심주의는 제국주의 체제를 빼닮았다. 식민지에서 제국으로 부와 권력이 무한집중되는 현상이 대한민국 수도권과 지방 간에도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은 오는 2047년이면 세종시를 제외한 전국 16개 시·도의 생산연령인구(15~64세)가 대폭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의 감소폭은 -27.8%로, 전국 평균치(-31.8%)보다 낮다. 반면 지방은 대부분 평균치를 웃돈다. 지방 인구의 수도권 유출이 가속화되는 ‘수도권 블랙홀’ 현상이 주요인이다. 부산(-45.6%)의 감소폭이 가장 크다. 2017년 기준 342만 도시가 30년 뒤에는 268만 도시로 쪼그라든다. 가히 재앙 수준이다. 태평양과 유라시아 대륙을 잇는 동북아 관문도시로의 성장이 과연 가능한지 의문이다.

수도권 중심주의는 ‘브레이크 없는 벤츠’와 같다. 이대로 가다간 지방이 소멸되고, 수도권 역시 존립할 수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수도권 중심주의는 갈수록 강고해져 간다. 괴물이다. 자신과 타인을 모두 죽이는 괴물이다. 우리는 그 괴물이 모는 공멸의 폭주 기관차를 타고 있다.

논설위원 yis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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