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의 ‘원목(原牧)’이란 글을 읽어보자. ‘원(原)’은 근원을 따진다는 말이니, ‘목(牧)’이 무엇인지 근원부터 따져본다는 뜻이다. ‘목(牧)’은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백성을 다스린다는 뜻으로 쓰인다. 혹은 그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전근대 사회에서 위정자들은 피통치자인 백성을 보살펴야 할 양 떼나 소 떼로 생각했기에 ‘짐승을 기른다’는 뜻의 ‘목(牧)’ 자를 다스린다, 통치한다는 뜻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요컨대 ‘원목’은 요즘 말로 정치와 정치인(혹은 관료)이란 무엇인지 근본부터 따져보자고 제안한 것이라 하겠다.
다산은 이렇게 말한다. “목민자가 백성을 위해 있는 것인가? 백성이 목민자를 위해 있는 것인가?” 백성은 농사를 지어 곡식을 생산하고 길쌈으로 옷감을 짜낸다. 그것을 목민자에게 바치고 목민자를 섬긴다. 말과 수레를 대령하고 마부노릇을 하면서 오는 목민자를 환영하고 떠나는 목민자를 환송한다. 이렇듯 백성이 고혈을 짜내어 목민자를 살찌우고 있으니 백성이 목민자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가. 다산은 이렇게 자문하고 즉각 부정한다. “아니다! 목민자가 백성을 위해 있는 것이다!”
목민자는 언제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다산에 의하면 아득한 옛날에는 목민자란 존재 자체가 없었고, 그 뒤 백성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일 뿐이라고 한다. 예컨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백성이 이웃과 다툼이 생겨 해결하지 못할 경우가 있다고 하자. 그는 평소 공정한 언행으로 이름난 어른을 찾아가 해결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과연 공정하게 분쟁을 해결해 주었다. 이에 감복한 사람들은 그를 ‘이정(里正)’으로 떠받들고 마을 일을 맡긴다.
이런 방식으로 목민자가 차례로 생겨났다. 마을과 마을이 모이면 ‘당장(黨長)’을, 고을과 고을이 모이면 ‘주장(州長)’을 떠받는다. 차츰 단위가 커지면서 국군(國君)과 방백(方伯)이 뽑히고, 최종적으로 세상 전체를 아우르는 황왕(皇王)이 추대된다. 황왕은 곧 황제인 셈이다. 이런 이유로 다산은 황제를 위시한 모든 목민자는 백성을 위해 백성에게 추대된 존재일 뿐이라고 못 박는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한 사람이 스스로 황제가 된 뒤 자기 아들과 동생, 심부름꾼, 노비까지 모두 제후로 만들어준다. 그 제후들은 자기와 가까운 사람을 주장으로 임명하고, 주장은 자기 사람을 당장과 이장으로 세워준다. 이런 이유로 인해 당장과 이장은 백성에게서 긁어내어 주장을 섬기고, 주장은 다시 제후를 섬기고 제후는 다시 오직 황제만을 섬긴다. 백성이 자신의 이익과 필요에 따라 이정과 주장, 국군, 방백, 황왕을 뽑던 것과는 정반대가 된 것이다.
다산은 자기 시대의 지방 수령(守令)이 옛날로 치면 황제 밑에서 작은 나라를 다스리던 제후에 해당한다고 말한 뒤 수령들의 저택과 말과 수레, 의복, 음식, 부리는 종들이 임금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실제 지방에서 수령은 임금과 다름없는 권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 백성들 사이에 분쟁이 있어 공정한 판단을 구하려고 찾아가면 “왜 이리 시끄럽게 구느냐”고 짜증을 내고, 사람이 굶어 죽으면 “스스로 죽었을 뿐이야”라고 내뱉고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만약 백성이 곡식을 생산하고 옷감을 짜서 자신을 섬기지 않으면 몽둥이를 휘둘러 마구잡이로 긁어내고 결국 피를 보고야 만다. 그렇게 긁어 들인 돈을 권력자들에게 바쳐 훗날 출세의 밑천으로 삼을 뿐이다. 현실적으로는 백성이 목민자를 위해 있는 것이다.
다산은 ‘원목’의 말미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민자는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백성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은 선거를 통해 국민의 복리(福利)를 위해 일할 정치인을 뽑는다. 다산이 그토록 원했던 바가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어떤가. 국민을 위해 법을 만들고 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걸핏하면 꼴사나운 이유를 대며 국회를 뛰쳐나와 일을 하지 않고 빈둥거린다. 그렇게 하고도 국민이 낸 세금으로 세비를 받고 예우를 받는다. 다산의 말을 빌려 물어보자. 도대체 국민이 국회의원을 위해 있는가, 국회의원이 국민을 위해 있는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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