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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BTS와 이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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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1953년 파리에서 초연됐을 때 이해할 수 없는 대사를 하염없이 중얼대는 이 부조리극을 두고 비평가들은 ‘고도’가 누구 혹은 무엇인지 해석하느라 난리를 폈다. 그러나 4년 뒤 같은 연극이 미국의 한 교도소에서 공연됐을 때 재소자들은 뜨겁게 환호하며 단번에 공감했다. 그들은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봤다. “가봐야 별거 없겠지만 그래도 나가고 싶은 바깥세상, 그것이 ‘고도’다.”

러시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1913년 파리에서 ‘봄의 제전’이란 작품을 공개하자 낯선 리듬과 선율에 충격받은 관객들이 야유와 조롱을 퍼부었던 사건은 유명하다. 마르셀 뒤샹이 1917년 남성용 소변기를 ‘샘’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하려다 예술작품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당한 일도 잘 알려져 있다. 현대 예술이 때론 지나치게 전위적이어서 어렵다곤 하지만 그런 만큼 해석의 여지가 풍부한 열린 세계임도 사실이다. 정답이 없는 예술은 자기 방식대로 감상할 특권을 누구에게나 부여한다.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본명 김남준)이 이달 중순 부산 공연에 앞서 부산시립미술관에 있는 ‘이우환 공간’을 들렀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불어 관람객이 늘었다는 소식이다. 4년 전 개관 때보다 관심이 낮아져 최근엔 하루 30명 안팎이었으나 RM 방문 이후 200명을 훌쩍 넘겼다는 것이다. 매니저와 단 둘이 이곳을 찾은 RM의 미술에 대한 조예와 해박함에 놀랐다는 게 미술관 관계자의 말이다. 하얀 캔버스에 푸른색 점 하나 달랑, 혹은 불그레한 철판 위에 돌멩이 하나 달랑. 이런 그림이나 조각을 처음 접한 사람들이 느끼는 당혹감으로 치면 뒤샹에 결코 뒤지지 않을 이우환 선생의 작품이지만 이 젊은 아티스트는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방식으로 ‘이우환’을 소화한 게 분명하다.
RM은 방명록에 ‘바람’이라는 작품을 좋아한다고 썼다. 점 선 면으로 이어지는 이우환 선생의 회화 시리즈 중에서 붓으로 물감을 이리저리 휘갈겨 놓은 듯한 작품이다. 그러고 보니 BTS의 춤과 ‘바람’이 많이 닮은 것도 같다. 한국의 생존 작가 중에 가장 유명한 83세의 세계적 거장과 ‘피 땀 눈물’의 음악으로 세계 정상에 우뚝 선 25세의 대중음악인이 부산에서 예술을 매개로 조우했다. 이우환 선생이 만약 이 소식을 듣는다면 뭐라고 반응할까. 선생은 손자뻘인 BTS의 음악을 들어보기는 했을까. 그런 상상만으로도 하루가 괜히 즐겁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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