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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노후 수도관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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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천 년인 2000년으로 넘어갈 무렵에 재미난 조사가 하나 있었다. ‘과거 천 년 동안 인류에게 가장 크게 기여한 과학기술은 무엇인가?’ 컴퓨터와 자동차 등이 꼽혔지만, 최종 결과는 의외로 정수 기술이 선정됐다. 이 기술로 안전한 수돗물이 공급된 후로는 인류의 평균 수명이 30년이나 길어졌다는 점에서다. 비근한 예로 18세기 말 영국에서 수인성 질병이 창궐해 엄청난 인명 피해를 냈고, 오염된 물 탓에 수명이 짧았던 걸 생각하면 알기 쉬울 터다.

우리나라는 1908년 상수도가 처음으로 도입된 이래 수도 보급률과 고도정수 기술 등의 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특히 수돗물의 맛 부문에서는 세계적 수준이란 평가도 받는다. 그렇지만 수돗물에 대한 불신감은 여전하다. 수돗물을 그대로 음용하는 비율이 영국 70%, 미국 56%, 일본 47% 정도인 반면 우리는 10%도 채 되지 않으니 말이다.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노후 수도관도 그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듯하다.

요즘 인천의 ‘붉은 수돗물’ 사태만 봐도 그렇다. 수돗물 공급경로를 바꾸기 위해 수압을 높인 영향으로, 낡은 관로 내부의 녹과 이물질이 벗겨지며 더럽고 검붉은 수돗물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지난달 말 처음 발생한 이후 피해지역이 갈수록 확산됐고 해당 주민들은 20일 넘도록 식수 고통을 겪는 상태다. 수돗물을 마시는 건 고사하고 설거지나 샤워할 때도 비싼 생수를 쓰는 가정이 늘었다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일선 학교에서의 급식 차질은 이만저만 아니다.

이런 사태는 인천만의 문제로 치부될 수 없다. 오래된 상수관이 전국 도시에 산재해 있어서다. 그제 정부 자료를 보면, 국내 20년 이상 노후관이 35%이고 30년 내구연한을 초과한 것도 12%에 이른다. 상수관 외 다른 지하시설물의 노후화도 심각하다. 20년 이상 된 비율이 송유관 98%, 통신구 91%, 하수관로 40%, 가스관 35% 등에 달해서다. 그러니 정부가 내년부터 4년간 32조 원을 투자해 시설정비에 나서기로 한 것은 당연한 조처다.
맑은 물 확보가 숙원인 부산은 더 경각심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 과거 수돗물 사고가 잦았고, 근래에는 대형 상수관 누수·파열도 심심찮게 일어나서다. 더욱이 부산은 노후관이 많은 데다, 대형 화물차량의 통행이 지하관로에 충격을 주면서 사용연한도 줄어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 만큼 상수관로에 문제가 없도록 지속적으로 유지관리하고 제때 정비·교체하는 게 상책이다. 인천의 수돗물 사태는 반면교사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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