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도시는 지속 가능성 면에서 미국 도시보다 더 우수하다. 그건 대중교통 체계만 봐도 알 수 있다’. 미국의 저명한 도시환경계획학 교수인 티머시 비틀리가 그의 명저 ‘그린 어버니즘(Green Urbanism)-유럽 도시에서 배운다’에 적은 표현이다. 그처럼 세계적 석학이 부러워하고 탐구할 만큼 유럽 유명 도시들의 대중교통은 뛰어나다. 일찍이 자동차 의존의 한계를 인식하고 버스·트램·철도 같은 대중교통의 통합적 구축에 우선순위를 둬 와서다.
그에 비해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대중교통의 중요 축인 시내버스 준공영제만 해도 말썽이 끊이지 않는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나, 그 폐해가 갈수록 심하다. 준공영제에 따라 부산시의 막대한 보조금을 받는 버스업계에서 각종 비리가 툭 하면 터지니 말이다. 예컨대, 친·인척을 회사 직원인 양 꾸며 수십 억 원의 보조금을 타는가 하면 운전기사 채용 대가의 금품수수가 다반사다. 심지어 그린벨트의 가족 소유 나대지를 버스차고지로 쓰는 것으로 위장하고 업체의 접대비와 벌금, 세무 자문료도 표준운송원가에 포함시켰다고 한다. 드러나지 않은 것까지 감안하면,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운송원가가 이렇게 엉터리로 산정되고 유가·인건비 인상 등의 요인도 더해지니, 시 재정지원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게 당연하다. 2011년 932억 원이던 보조금이 올해 1800억 원으로 늘었고, 내년에는 2000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마찬가지다.
따지고 보면, 이런 사태는 ‘수입금공동관리’에 토대를 둔 현행 준공영제가 2007년 부산에 도입될 때부터 우려됐던 일이다. 이 방식은 수입금만 공동 관리할 뿐 버스업체의 운송적자를 시 재정으로 메워준다. 그러니 자치단체가 적자 보전에 무한책임을 지는 반면 버스회사의 비용 절감이나 서비스 향상, 수입 증대 등을 유도할 수단은 거의 없다. 버스 노선 폐지나 감차 등을 탄력적으로 시행하기도 어렵다. 이 같은 구조가 시내버스업계의 만성적 비리와 도덕적 해이를 초래한 꼴이다. 지난 몇 년간 유사한 비리가 잦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더구나 이를 예방·검증할 장치마저 부실하니 버스회사로서는 땅 짚고 헤엄치는 격이다.
그렇다면 제도를 진작에 뜯어고쳤어야 옳은데, 행정당국은 뭘 했는지 모르겠다. 지금부터라도 새롭게 시작해야 마땅하다. 그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시내버스를 점차 공영화하는 방안이 제기된다. 하지만 막대한 예산 소요와 사유재산 매입 등을 감안하면 간단하지 않다. 그렇다고 수익논리가 판치는 민영제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실 공영제의 공공성과 민영제의 효율성을 적절히 섞은 준공영제는 주요 선진국 도시의 사례에서 보듯이 운영의 문제이지 그 자체가 나쁜 게 아니다. 따라서 지역 여건에 맞게 준공영제의 개선책을 마련하는 게 현실적 방법이다.
유력한 대안 중 하나는 입찰제 방식의 노선관리형 준공영제다. 영국 런던이 종전 민영제에서 공영제로 넘어갔다가 과도한 재정 부담 탓에 1986년 노선입찰제의 준공영제로 바꾼 것은 타산지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경기도가 이를 추진하고 나섰다. 재정을 지원하되 6년 정도 주기로 입찰에 부쳐 운송원가를 낮게 써낸 업체에 노선운영권을 주는 것이다. 한마디로 경쟁적 요소를 도입한 셈이다. 그 외 노선운영을 법인 혹은 업체에 위탁하는 방식도 꼽힌다.
어떤 방식이든 준공영제의 효과가 저절로 나는 건 아니다. 기본 전제요건이 있다. 간선-지선-순환노선으로 운영을 체계적으로 개편하고, 효율적인 환승시스템을 갖추는 일이다. 아울러 시내버스 이용도를 높이는 다양한 노력을 병행해야 준공영제의 약발이 먹힌다. 교통체계와 노선운영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은 채 준공영제만 시행해서는 돈만 많이 들고 도시교통 및 서비스 개선 효과는 미약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비틀리 교수의 지적처럼 유럽 도시 중에서도 스위스 취리히의 대중교통시스템은 모범사례다. 전담기관에 의해 운영·통제되는 전차와 버스가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이룬다. 시 전역에서 전차 역이나 버스정류장을 손쉽게 찾을 수 있고 운행빈도 역시 6~8분 간격으로 비교적 짧다. 대중교통에 전용도로와 신호 우선권을 주는 시스템이다 보니, 승용차 이용보다 더 빠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부산시는 오거돈 시장 취임 이후 도시철도 중심의 대중교통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바람직한 방향이나 도시교통난은 철도로만 풀리는 게 아니다. 시내버스와 전차, 보행길 등 다른 교통수단과의 통합적 유기적 체제를 구축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울러 대중교통은 모든 시민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이고 공공복지라는 인식이 바탕을 이뤄야 한다. 시내버스가 대중교통 통합의 핵심인 유럽의 이름난 도시들이 주는 메시지이자 교훈이다.
논설위원 ksyoung @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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