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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잠정적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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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재정 확대로 유효수요를 창출해 경제를 활성화하는 정책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건 1936년 출간된 케인스의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이다. 그런데 그보다 4년 앞서 이 이론을 정책으로 구현한 정치가가 있다. 1932년 집권한 스웨덴 사회민주당 정권에서 재무부 장관을 지낸 에른스트 비그포르스(1881~1977)다. 그는 병원이나 학교 등 국가가 주관하는 공공사업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그 임금을 민간기업 수준으로 높였다. 그렇게 획득한 소득은 소비를 촉진시켰고, 이는 다시 생산과 투자를 늘리는 선순환 효과로 이어졌다.

이것만 보면, 우리 사회의 보수 진영이 비판하는 ‘좌익 포퓰리즘’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비그포르스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기업의 생산성과 시장의 효율성을 중시했다. 대표적인 치적이 1938년 정부의 중재로 스웨덴 노동자총연맹과 경영자총연합회가 체결한 ‘살트셰바덴 협약’이다. 이 협약을 통해 노측은 사측의 고용 유연성 및 생산성 극대화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 대신 사측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세금을 부담하며 양질의 생활이 가능한 노동 복지를 책임졌다. 그 결과 협약 체결 전까지 노사 분규가 끊이지 않고, 국민의 3분의 1에 이르는 150만여 명이 이민을 떠날 정도로 가난했던 스웨덴은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로 거듭났다. 노·사·정의 사회적 대타협으로 일군 상생의 본보기라 하겠다.

그 동력은 비그포르스를 비롯한 스웨덴 사민당 지도자들의 철학이다. 그들은 사회주의를 추구하지만, 노동자 계급의 혁명을 지렛대 삼아 사회주의 사회로 이행한다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결정론적 역사발전법칙을 신봉하진 않았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수요와 공급이 조절돼 사회가 돌아간다는 자유시장주의에도 선을 그었다. 시장 논리와 공동체 복지가 조화를 이룬 제3의 길을 걸었다. 이른바 ‘잠정적 유토피아(Provisional utopia)’로 불리는 스웨덴 모델이다. 비그포르스는 “우리는 몇 십년, 몇 백년 뒤에 찾아올 낙원을 준비하며 살아가지 않는다. 낙원은 인류 역사의 시작에도 없었고, 마지막에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유토피아를 꿈꾸되, 당면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최선의 방법을 도모하는 실용주의다. ‘잠정적’이란 수식어가 붙은 건 그래서다.

핀란드와 노르웨이 방문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마지막으로 스웨덴을 찾았다. ‘잠정적 유토피아’ 철학에서 사회적 대타협과 공존의 지혜를 배우길 기대한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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