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세상읽기] 이름이 올발라야 도시가 올발라진다 /차현진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6-12 19:33:12
  •  |  본지 30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부산과 경남이 미래를 위해 손을 잡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그동안 두 지역은 부산항 신항 확장의 원칙에는 공감하면서도 그 위치를 두고 반목하다가 이제 손잡고 청사진을 함께 그리기로 했다. 참으로 훈훈하다.

타 지역에서는 두 지역의 갈등을 작명 문제로만 이해했다. ‘부산 제2 신항’이냐, ‘진해신항’이냐. 그 갈등의 실체는 새로운 시설을 가덕도 쪽으로 넓히느냐, 진해 제덕만 쪽으로 넓히느냐의 문제였다. 그러니까 단순한 작명의 문제가 아니라 항구의 미래와 실체를 둘러싼 대립이었다.

그렇다. 이름이 곧 실체다. 이름을 모르는 것은 존재를 모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통영 시인 김춘수는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시 ‘꽃’)고 하지 않았던가!

유감스럽게도, 부산 시민은 이름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대범한’ 경향이 있다(외지 사람의 눈에는 그 대범함이 아주 강하다). 부산항에는 허치슨 우암 감만 신선대 등 고유한 이름을 가진 부두들이 있다. 심지어 중앙, 1, 2, 3, 4 등 현재 기능을 멈춘, 죽은 부두에도 이름이 있다. 그런데 정작 사람으로 북적이는 여객부두에는 이름이 없다. 국제여객, 연안여객, 국제크루즈 등을 이름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이름이 아니라 기능이다. 마치 어느 식당의 이름이 ‘식당’인 것과 다르지 않다. 물건을 실어 나르는 부두에는 이름을 붙이면서, 사람이 주인인 부두는 이름도 없으니 여객부두들이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탄할 일이다. 이 얼마나 기막힌 대범함인가!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부산항 앞의 아름답고 웅장한 다리의 이름은 ‘부산항대교’다. 그 다리를 바라보는, 죽은 부둣가는 ‘북항’이다. 발전의 상징일 때는 부산항이고, 재개발의 대상일 때는 북항이다. 살아서는 명태, 죽어서는 북어가 되는 꼴이다. 그래서 외지 사람들에게 부산의 명명법은 낯설고 어지럽다.

부산은행과 한국은행 부산본부는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에 입주한 기관이다. 그렇지만, 방문객에게 “BIFC로 오세요!”라고 했다가는 낭패다. 바로 옆 BIFC 빌딩 앞에서 화가 나 있는 손님을 모셔와야 한다. “저희는 BIFC에 있지만, BIFC 빌딩에 입주하지는 않았습니다”라는 이상하고 장황한 설명을 해야 한다. “다대포항은 부산항이 아니지만, 부산항의 하나입니다”라고 말할 때와 비슷한 곤혹감을 느낀다. 집합명사와 고유명사를 구분하지 않는 데서 오는 혼란이다. 부산이 유독 그런 경향이 강하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듯이, 이름은 더는 해부될 수 없는 원초적 기호다(‘논리철학논고’). 이름이 곧 그 대상이다. 이름이 잘못되면, 모든 것이 흐트러진다. 일제강점기에 우리 조상들이 창씨개명에 그토록 분노했던 것은, 이름이 지워지면 더는 해부될 수 없는 원초적 자아 즉, 한국인의 혼이 사라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산에는 좌천동(佐川洞)이 있다.

향토사학자들은 좌천동의 유래가 옛날 그 지역에 흐르던 좌자천(佐自川)이라고 한다. 하지만 1930년대에 일본인들이 좌천동으로 고친 것이라 일본 색이 짙다. 그들에게 친숙한 일본의 지명과 성씨인 사가와(佐川)로 고친 것이다. 그들은 기장군의 좌광천(佐光川) 주변도 사가와(좌천)로 불렀다. 어쩌면 사가와 지역의 집성촌 사람들이 대거 이민 온 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를 고려할 때 부산의 좌천역은 ‘좌자천역’으로 부르거나 ‘좌자역’으로 부르는 것이 맞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일제의 잔재를 답습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부산의 발전은 바른 명명법에서 출발한다. 산과 물, 다리와 항구의 이름을 주민들이 제대로 붙여주고 정성스럽게 불러야 외지 사람도 관심을 두지 않겠는가. 부산의 땅과 항구는 호소한다.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꽃’)라고….

참고로, 2004년 말 청와대에 새로 지어진 건물의 이름이 여민관(與民館)이다. 애초 신관(新館)으로 부르려던 계획을 마지막에 바꿨다. 당시 파견 직원이었던 필자가 이름과 기능은 구별해야 한다면서 제안했다. 부산에 잠시 근무하는 필자는 여민관보다 부산을 더 사랑한다.

한국은행 부산본부장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많이 본 뉴스RSS

  1. 12만여 명 응시…부산교통공사 시험 연기 vs 강행 ‘팽팽’
  2. 2부산 신천지 교회·연수원 3곳 출입금지
  3. 3부산 호텔 1만800실 예약 취소…관광업계 ‘휘청’
  4. 4부산 ‘97세대’ 총선 돌풍 일으킬까
  5. 5감염경로 확인 안 되는 환자 속출…대구 신천지 예배간 경남도민 2명 자가격리
  6. 6버스 무정차운행·열감지기 확대…부울경 경계수위 높인다
  7. 7북항재개발 중-동구 관할 싸움에 BPA 곤혹
  8. 8국내 첫 사망 ·확진 100명 넘어…‘코로나19 악몽’
  9. 9“기생충, 오스카 감독상 받을 때 작품상도 직감”
  10. 10하늘에서 본 통영의 美…전국 드론 영상 공모전
  1. 1조경태 "중국인 입국 즉각 중단하라"
  2. 2대구 모든 유치원, 초·중·고교 개학 연기...전국 처음
  3. 3 문 대통령 “코로나19 대응 중국 측 노력에 힘 보탤 것”
  4. 4부산시, 코로나19 피해 관광업체에 특별융자·지방세 유예
  5. 5"단일화 없나?" 경남 진보 1번지 창원성산 대혼전
  6. 6서구 동대신1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찾아가는『情 담은 식료품 배달』봉사
  7. 7김형오 “공천 심사과정 직접 보면 깜짝 놀랄 것”
  8. 8박형준 “현재로선 출마 생각없지만 총선서 역할 고민”
  9. 9동명대, 산-학 쌍방향 인재양성 교육 활발 주목
  10. 10대통령 긴급재정명령 발동 하나…자영업자 임대료 인하·추경 검토
  1. 1부산 국제관광도시 사업, 코로나에 삐끗…“하반기 본격화”
  2. 2주가지수- 2020년 2월 20일
  3. 330대 그룹 중 순익 높은 최고 알짜는 ‘KT&G’
  4. 4부산시 전기차 구매 보조금 지원 확대
  5. 5현대·기아차, 도로상황 따라 기어 바꿔주는 시스템 개발
  6. 6금융·증시 동향
  7. 7북항재개발 중-동구 관할 싸움에 BPA 곤혹
  8. 8부산세관, 수출 지원 지역 순회 상담 진행
  9. 9부산항 환적화물 효율 처리…터미널 간 ‘순환레일’ 설치
  10. 10올해 러시아 수역 어획할당량 4만6700t…5년 내 최대
  1. 1전주서 ‘코로나 19’ 1명 의심증상 … 신천지 대구교회 방문
  2. 2포항에서도 코로나 19 첫 확진자 나왔다 … 신천지 교인
  3. 3 전주에서도 코로나 19 첫 확진자 나왔다 … 28세 남성
  4. 4경북서 ‘코로나19’ 5명 추가 확진…영천 1·상주 1·경산 3(종합)
  5. 5경북 코로나19 확진자 10명으로 늘어… 영천4·경산3·청도2·상주1(종합)
  6. 6종로구서 75세 남성 코로나19 확진…한빛어린이집 휴원(종합)
  7. 7좋은강안병원 응급실 폐쇄…코로나19 의심환자 3명 검사 중
  8. 8검찰 조사 中 10층서 투신한 20대 피의자…4층 정원에 떨어져 목숨 건져
  9. 9코로나19 확진 31명 추가 발생…국내 확진자 82명
  10. 10제주서 31번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한 1명 역학조사
  1. 1손흥민, 국내서 부러진 팔 수술받는다…서울 시내 병원에 입원
  2. 2수원 이임생 감독, 염기훈 경기력 호평해…"이니에스타보다 염기훈"
  3. 3테니스 권순우 ATP 3연속 8강
  4. 4MLB 최고 갑부 알렉스 로드리게스
  5. 5손흥민 빠진 토트넘, 안방서도 무기력한 패배
  6. 6정마리아·강영서, 전날 아쉬움 씻고 금빛질주
  7. 7조용히 귀국한 손흥민 21일 수술대…3년 전과 같은 부위
  8. 8
  9. 9
  10. 10
한국전쟁 70년…분단인 통일인
독일 통일과정 7대 과오
한국전쟁 70년…분단인 통일인
다시 읽어보는 한 ‘분단인’의 삶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제1부두, 이왕 보존하는 김에 제대로
도시 규제의 경제학
기고 [전체보기]
해양안전, 민관 유기적 협력이 필수 /이광진
각본상 ‘기생충’과 문학·문학인의 자리 /김광수
기자수첩 [전체보기]
화포천습지, 보호대책 서둘러야 /박동필
장난치지 말고··· /신심범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개혁을 위한 아카데미상은 없지만
영화 진흥은 영화관서 시작된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강강술래와 농악
‘시립’과 ‘국립’의 앙상블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전략적인 전략공천인가 /정유선
이상문학상 사태가 남긴 것 /정홍주
도청도설 [전체보기]
자객 공천
해운대암소갈비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여든 살 어머니의 만학
상월선원의 천막결사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일본음식과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어느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10주년
사설 [전체보기]
코로나19 첫 사망에 급속 확산…비상한 방역 전략을
개금 옛 미군부지, 시민 위한 공간 제대로 활용되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인구 절벽 시대, 복지 대타협 급하다
지속 가능한 노인 돌봄, 지역사회도 나서라
이수훈 칼럼 [전체보기]
“한미동맹, 이상없다”
한일 ‘투 트랙 외교’ 올해는 회복해야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호의가 낳은 명작
죽기를 결심하고 그린 명작
이홍 칼럼 [전체보기]
한국 경제 회복탄력성이 관건이다
한국 경제, 희망의 빛도 보인다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
설 연휴 무탈하셨는지?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나의 LP 이야기
핀란드의 찬가 ‘핀란디아’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 바이러스와 기생충
와인의 소리
특별기고 [전체보기]
‘코로나 19’ 반드시 이겨낼 것이다 /곽붕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심사정 지두화 ‘절로도해도’
겸재 정선 ‘수박 서리하는 쥐’
  • 2020하프마라톤대회
  • 제8회 바다식목일 공모전
  • 2020 어린이 극지해양 아카데미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