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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사람이 야속하더라 /이정임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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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06-09 19:30:11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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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복도로의 집들은 대부분 다닥다닥 붙어있다. 집을 위쪽으로 높게 쌓은 것이 아파트라면 산복도로 주택은 옆으로 길게 눕힌 아파트 같다. 아파트는 층간 소음이 문제이겠지만 주택에 사는 나는 벽간 소음을 경험한다. 아파트 소음은 어느 집에서 나는 소리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데 우리 동네 소음은 어느 집에서 나는 소리인지 알 수 있다.

오전 7시 반. 안방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옆집에서 공업용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할머니 두 명이 팔 토시 등의 의복을 만들고 있다. 재봉틀이 돌 때마다 벽 전체가 휴대전화처럼 진동하는 느낌을 받는다. 생체시계가 아직 한밤중인 나는 하아, 한숨을 쉬며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당긴다. 하지만 더욱 요란한 소리가 들려온다.

꿍짝꿍짝, 다른 편 옆집 아저씨가 켜놓은 ‘뽕짝’ 소리다. 쉬지 않고 나오는 메들리 반주에 맞춰 하춘화 아닌 가수가 ‘사랑이 야속 하드라’며 간드러지게 하소연한다. 그 하소연에 화답하듯 아저씨가 추임새를 넣는다. 그리고 비슷한 시각, 뒷집 아줌마와 뒷집의 뒷집 아줌마가 떠드는 소리. 크고 높은 그녀들 특유의 목소리가 내 고막을 찌른다. 뒷집 아줌마는 쉽게 화를 내고 쉽게 웃는다. 뒷집의 뒷집 아줌마는 긍정의 말들을 자주 하지만 말이 크고 빨라서 얼핏 들으면 싸우는 소리 같다. 저 아줌마들은 왜 꼭 우리 집에서 대화를 할까. ‘사람이 야속하더라’며 하소연하고 싶지만 누구에게 먼저 항의를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소음은 사람만 내는 것이 아니다. 우다다다다. 우리 집 옥상에서 길고양이 새끼들이 뛰는 소리다. 지난봄, 암컷 고양이가 집 한편에서 키우던 새끼들은 ‘허피스’에 걸려서 고름 때문에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는데 치료받지 않으면 곧 죽을 것 같았다. 눈을 닦아주고 약을 먹이자 다행히 모두 건강해졌다. 건강해지자마자 고양이들은 ‘천하제일 무술대회’라도 여는 것인지 옥상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달리다가 우당탕, 무언가 엎는다.

아침 소음 대미의 장식은 대개 우리 집 고래 차지다. 뽕짝을 트는 옆집 고양이 호떡이가 우리 거실 창문에 붙어서 고래를 놀리는데 영역 동물인 고양이로서는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고래는 세상 이렇게 억울한 일이 없다는 듯이 이름값 하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난다. 참으로 ‘평화로운’ 모닝콜이다. 나는 잠시 분노하지만 그냥 돌아선다.

이사 온 첫해 어느 날 아침. 누군가 이쒸, 라는 소리를 연이어 내면서 씩씩거렸다. 동네 소리에 잔뜩 예민해진 나는 왜 우리 집 앞에서 그러냐고 따질 요량으로 골목으로 난 창문에 다가갔다. 하지만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장애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계단 바닥을 기어서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닥을 짚은 양손에는 수면양말이 끼워져 있었다. 계단참이 나타나자 이번에는 벽에 등을 붙이고 옆으로 움직였다. 저 이를 도와야 하나 어쩌나, 고민하는데 뒷집 아줌마가 그에게 외쳤다. “그래, 이제 잘 가네. 힘내라!” 그러자 벽에 붙어있던 여성이 밝게 외쳤다. “네!” 아마 자주 그렇게 계단을 오르내리는 모양이었다. 그 뒤로 나는 바꿀 수 없는 동네 소음에 적응해보기로 했다.

잠에서 깬 남편과 나는 옥상에 올라간다. 주인이 제대로 돌보지 않아 밖으로만 나도는 호떡이와 먹을 것이 없어 떠도는 길냥이들을 위한 사료와 물을 두고 길고양이 새끼들이 망쳐놓은 밭을 수습한다. 옆집 아저씨의 뽕짝이 웬일로 금세 끝난다. 어딘가 전화를 걸어 통화를 하는 모양이다. 그는 작년 암 수술을 받은 후 회복 중인데 하는 일 없이 집에만 있는 것이 갑갑하단다. 쉬는 시간인지 재봉틀 할머니가 문틀에 앉아 담배를 한 대 입에 문다. 오전에 저렇게 일을 하고 오후에는 어린 손자들을 돌볼 것이다.

나는 아침마다 듣는 불쾌한 이 소음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가끔 항의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내는 삶의 소리라는 점에 결국 수긍하고 만다. 사랑은, 사람은, 삶은 늘 야속하니까. 오늘도 우리 동네는 다이내믹하게 평화롭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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