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설이 심상찮다. 그런데 국회는 문을 닫은 지 오래고, 청와대는 경제가 성공의 길로 간다고만 외치고 있다. 국민들은 피부로 느끼는 경제상황과 청와대의 발표 사이에서 헷갈리고 있다.

지난달 말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안,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 등에 대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이후 여당은 민생법안 처리를 위해 한국당에 대해 조건없이 국회로 돌아오라고 압박하고,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사과·철회 없이는 국회 복귀가 어렵다고 맞서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외교기밀 유출’과 ‘국가정보원장 총선 개입 의혹’이 터져나오면서 정치권은 마주보고 달리는 치킨게임을 피할 생각조차 않고 있다. 20대 국회 임기는 이제 정확하게 1년이 남았고, 그나마 실제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7개월 정도에 불과하다. 공멸의 게임을 당장 중단하지 않는다면 위기설을 증폭시키기에 차고 넘치는 기간이다.

청와대와 정치권이 집단으로 신경마비증에라도 걸린 듯하다. 국민들의 정치혐오증은 깊어만 가고 있는데도 누구 하나 나서서 중재하겠다는 ‘어른’이 없다. 과거같으면 이정도 경색정국이 계속되면 어떤 식으로든 대화가 시작됐다. 겉으로는 치열하게 싸우더라도 중진들이 나서 해법을 모색했고, 결국은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는 선에서 해답을 찾아냈다. 군사정권이나 권위주의 정권 때도 민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졌다.

그런데 지금은 ‘어른’들이 오히려 정치투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여야가 ‘정치’라는 한솥밥을 먹는다는 동지의식은 사라진 지 오래다. 오로지 ‘적군’과 ‘아군’이 있을 뿐이다. 상대방은 타도하고 척결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총선정국을 앞둔 주도권 싸움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을 직접 겨냥, 대야 전선의 선봉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한미 정상 통화내용 유출과 관련, 지난 29일 국무회의에서 “기밀유출을 공익제보로 두둔하는 정당의 행태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기본과 상식을 지켜달라”고 자유한국당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이에 앞서 5·18 기념사에서도 한국당을 향해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고 일갈했다.

한국당이라고 가만 있을 수 없다. 황교안 대표는 3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지금 우리나라에서 기본과 상식을 가장 안 지키는 분이 과연 누구냐”라는 말로 문 대통령을 직격했다. 이미 문재인 정권을 ‘좌파독재’로 규정하고, 문 대통령을 ‘김정은의 대변인’으로 지칭한 마당에 더 이상 거칠 것도 없다. 서로가 갈 데까지 가보자는 것이다.

여야 충돌의 최종단계에서 타협점을 찾아야 할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전면에 나서면서 바늘구멍 만큼이나마 남아있던 협치의 문까지 스스로 닫아버린 형국이다.

이미 여야는 충분한 막말을 주고받았다. 문 대통령의 “독재자의 후예” 발언에 한국당 소속인 이주영 국회부의장은 “남로당의 후예”라는 말로 맞받았고,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한국당을 “도둑놈들”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5·18 기념식 참석을 강행하겠다는 황교안 대표를 “사이코 패스”라고 지칭했는가 하면, 한국당 김현아 의원은 문 대통령을 ‘한센병’에 빗대어 비판했다. 앞서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달빛기사단’을 ‘달창’이라고 표현했다가 사과했다. ‘달창’은 여성을 비하하는 언어의 합성어다. 그야말로 막말의 악순환이다.

정치권이 막말 릴레이를 주고받는 사이 경제지표는 매일 기록을 경신하면서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성장, 투자, 소비, 수출, 고용, 주가 등 주요 경제지표들은 위험수위를 오르내리고 있다.

1분기 경제성장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로 추락했고, OECD에 이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2.6%에서 2.4%로 하향조정했다. 외국투자은행들도 전망치를 내리는 추세라고 한다.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전쟁이 우리나라에 어떤 파급효과를 미칠지는 아직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적했듯이 ‘일모도원(日暮途遠, 날은 저물고 갈길은 멀다)’의 절박함은 높아만 가고 있다. 경제위기에 대한 경고음이 도처에서 울려퍼지면서 ‘제2의 IMF사태’ 우려까지 제기된다. 하지만 경제부처 어디에서도 위기의식을 찾아볼 수 없다.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은 ‘오불관언(吾不關焉, 어떤 일에 상관하지 않고 모른 체함)’이다. 이러다가는 국민 개개인이 ‘각자도생(各自圖生)’에 나서야 하는 것이나 아닌지 걱정된다.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지 않고는 해법을 찾을 수 없다. 이제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야당대표와 단독으로 만나지 못할 게 뭔가. 국민을 위해 제발 포용력을 발휘해 달라.

서울본부장·서울정치부장 thrk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