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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5·18과 5·23 그리고 2019년 5월 /황경민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5-28 19:04:43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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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8일,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이송도 바닷가에서 수영하고 있었다. 당시 나와 친구들은 5월 초부터 시작한 수영에 빠져 제법 쌀쌀한 날씨임에도 날마다 바닷가에서 놀았다. 당연히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2009년 5월 23일, 나는 대학 동아리 선후배들과 함께 야유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선후배들은 전날 폭음을 했고, 숙취로 괴로워 하는 상태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 소식을 들었다. 당연히 그가 왜 갑자기 자살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한 해 늦게 입학한 대학의 교정에는 5·18에 관한 대자보가 나붙었고, 학살 영상이 상영됐다. 내가 아무것도 모른 채 파도에 몸을 맡겼던 그때, 광주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잔악하고 무도한 지옥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광주학살 영상을 시청한 학생들은 누구나 분노에 차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야유회에서 돌아와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내내 방송 채널을 돌리고, 인터넷만 하염없이 뒤졌다. 그가 왜 죽었는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 귀한 인격이 현실의 음모, 현실의 배반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던진 이 사건은 한동안 내게 깊은 분노와 우울감을 안겨다 주었다. 1980년엔 그러하지 못했지만, 2009년 5월의 나는 내내 대한문 분향소 앞에서 서성거렸다.

2019년 5월 18일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광주에 대한 부정과 긍정이 교차했으며, 그 어느 때보다 5·18 정신이 강조되었고, 모든 정치세력이 5·18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합창했다. 10주기를 맞은 2019년 5월 23일 역시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공연과 행사가 개최되었고, 민주당뿐만 아니라 진보정당으로 분류되는 일부 정당에서도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겠다며 선전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2019년 5월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일도 있었다. 지난 5일 시흥의 한 외딴 농로에 세워진 렌터카 안에는 두 살, 네 살배기 아이와 삼십 대의 부부가 숨진 채 발견됐다. 또 지난 20일에는 경기도 의정부의 한 아파트에서 가장이 아내와 딸을 살해하고 자살하기도 했다. 두 가족의 참변은 카드빚과 생활고가 원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왜 5·18 정신과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정치세력이 넘쳐나는데도 이 땅에서는 여전히 생활고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이 줄어들지 않는 것일까? 왜 대동 세상, 사람 사는 세상이 오기를 이렇게 많은 이가 꿈꾸는 나라에서 경쟁에서 탈락해 좌절하고 우울해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일까? 5·18 정신은 무엇이고, 노무현 정신은 과연 무엇이기에 지난 40년간 계승한 정신이, 지난 10년간 계승한 정신이 발현되지 않는 것일까?

군부독재가 무서운 건 자본주의적 착취와 독점, 억압 체제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자유가 무서울 수 있는 까닭 역시 자본가의 자유를 확대하고 보장할 때다. 자유를 확장하자는 건 자본가의 자유를 확장하자는 게 아니라 노동자, 시민의 자유를 확장하자는 거다. 평등을 꿈꾸는 것은 승자 독식의 경쟁 논리가 아니라 상생의 윤리 속에서 각각의 개성과 (인간)존엄에 맞게 물리적, 경제적 삶의 공평성을 보장하는 체제를 만들어 가자는 거다. 광주에서 시민군이 떨쳐 일어선 건 제 형제가, 제 친구와 이웃이 이유도 알 수 없이 국가권력에 참혹하게 당한 학살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약자들의 해방구-대동 세상이 광주였다.

계급성과 자본주의 모순이 누락된 적폐 청산, 수구 청산만이 광주의 꿈은 아니었다. 자본가들의 자유만을 확대해 가는 대의제 민주주의 따위가 광주의 꿈은 더더욱 아니었다. 내게 5·18은 평등하고 공평한 대동 세상의 가능성이었다.

그러나 5·23은 한 고귀한 인격의 죽음에 대한 비통함과 애도일 뿐이었다. 작금 이 땅에서 펼쳐지는 신자유주의적 자유, 이 ‘경쟁적 생존체제-자본 주도의 상시적 착취체제’는 군부독재만의 유산이 아니다. ‘5·18정신과 노무현 정신은 과연 어느 지점에서 만나고, 어느 지점에서 헤어지는가?’ 이것을 구분하고 숙고하지 않으면, 5·18도, 노무현도, 이 체제의 알리바이로 작동할 뿐이지 않겠는가?

작가·헤세이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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