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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과 법률] 그쯤은 법이 맡아야 한다 /오정진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5-22 19:37:19
  •  |  본지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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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나이 먹으며 살아가는 동안 다치거나 병들거나 아끼는 이를 잃거나 한다. 그러한 인생의 희로애락이야 피할 수 없는 운명이겠지만, 그 과정에서 처리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부당한 상황에 처하는 것은 결코 어쩔 수 없는 일은 아니다.
장애가 있어도 노쇠해져도 큰 제약 없이 자유롭게 사회의 공간을 다닐 수 있어야 하고, 일할 수 없게 되어도 의지할 데 없이 혼자 남겨진 것 같아도, 대등한 구성원으로서 존중받으며 공동의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사회기반시설과 사회적 보험, 실업, 연금 등 사회복지제도가 기본적으로 설계되어 운영되고 있는 바, 이는 더욱 광범위하고도 촘촘히, 일반적이면서도 일상적으로 확보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억울한 일을 당하면 제대로 하소연할 데가 있어야 하고, 나쁜 일을 겪으면 합당한 제도에서 마땅히 적절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쯤은 법이 맡아야 한다.

힘든 일에 휘말렸다고 해서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다 쏟아붓는 것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적정한 장치와 합리적인 절차에 의해 일이 온당하게 처리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고단하고 바쁜 생활에서 이리저리 쫓아다니느라 힘들고, 그러한 사정이 익숙한지라 제대로 된 처리는 엄두도 못 내는 풍경이 흔히 그려지는 상식이 되어 버린, 참으로 한심한 수준에서는 적어도 벗어나야 한다. 각각의 사람이 애쓰고 고통 받는 것을 방치할 것이 아니라 문제를 살피고 해결하는 과정의 부담, 일종의 거래비용은 법 제도에서 시스템적으로 담당하도록 되어야 한다. 아프면 큰 결심 없어도 병원에 가듯이 법적 정보와 도움, 서비스는 실제로 용이하게 활용 가능해야 한다.

물론 직접적인 법 장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심지어 그것을 적용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가 있더라도 그것으로 만사가 괜찮아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가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아무리 널리 퍼져 있고 수긍되어 있다고 해도 법적으로 처리될 수 있는지 여부는 다른 얘기이다.

통상적인 예상과 달리, 실은 법은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여러 제약이 있으며, 특히 응당 작동했어야 할 시기를 놓쳐 버렸을 때는 그 자체 무용지물에 가깝게 되어 버린다.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그때부터 관련 규정을 손보고 보완조치를 강구하곤 하지만 이미 놓쳐버린 기회를 쉽게 되살릴 수는 없다. 대체 왜 제때 제대로 다루지 않았거나 못했는지, 이 부당하고 아픈 일을 어찌할지 가슴을 치며 안타까워하고 탄식하는 이들에게 법은 너무도 야속해 보인다.

그러니 어쩌면 법이 정말 해야 하는 일은 우회로를 두껍게 마련해 두는 것이다.

파국의 상황으로 치닫기 전에 또는 그렇게 전개될 여지나 이유 없이, 삶의 곳곳에서 좀 아니다 싶은 것, 부당한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자연스럽게 얘기하고 의논하고 수정과 변화를 꾀할 수 있어야 한다.

낯설거나 불편할 수 있는 발언이라고 하더라도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으로 법이 정확하게 단호하게 지지해 준다면 일상의 관행과 문화는 그렇게 바뀔 수 있다고 확신한다. 어딘가에서 누군가에 의해서 어떤 문제 제기가 있을 경우 굳이 공식적인 통로가 아니더라도 다른 많은 이가 정의감을 발휘하고 발현시켜서 진정으로 듣고 공감하고 지지해야 한다.

서로의 삶이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을 적절하게 이해한 가운데 제도가 작동한다면 모두의 역량은 그처럼 예기치 않게 놀라운 방식으로도 발휘될 수 있다. 특별한 전문적인 자격을 갖춘 자만이 아니라 보통의 사람들이 당당하게 우리네 공통의 삶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담백하게 말하고 자신의 삶에서 충실히 지켜줘야 한다.
시민의 시간과 공간은 눈에 보이고 계산되는 것만이 아니라 무형의 가치가 있음이, 지금만이 아니라 다가오는 날들을 위해서도 존중되어야 함이 고려된다면 이는 가능하다. 그처럼 법이라는 이름 없는 삶 속에서, 법과 무관해 보이는 행위들 속에서, 그 덕분으로 법은 오히려 제대로 역할을 할 것이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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