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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빨갱이와 친일파 /전진성

극우세력들 ‘색깔론’ 기승…빨갱이 낙인은 희생 초래

반공이유로 용납 안될 것, 친일파 문제와 차원 달라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5-15 19:42:30
  •  |  본지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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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아닌 색깔론의 유령이 민주공화국의 심장부를 떠돌고 있다. ‘빨갱이라는 말은 친일 잔재’라는 대통령의 3·1절 발언 이후 극우세력의 색깔론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시대착오적인 낙인찍기에 경종을 울려야 마땅하건만 늘 그렇듯 일부 지식인의 양비론적 논리가 우리 머릿속을 더 어지럽힌다. 빨갱이라는 낙인만큼이나 친일파 낙인도 문제라는 주장은 언뜻 좌우익 진영 모두로부터 초연한 척하지만 역사적 경험에 전혀 부응하지 않을 뿐 아니라 엄중한 현실을 호도하는 논리다. 그것은 결코 동급의 적폐에 대한 균형 잡힌 비판이 아니다.

물론 친일파 낙인에도 편파적인 면은 있다. 일단 용어 자체가 부정확하다. 일본(인)과 친한 게 문제 될 것 없다면, 일본에 부역했다는 의미의 ‘부일파’라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할 것이다. 친일파라는 표현에는 지나친 민족주의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역사해석으로도 일방적이다. 이 땅의 기득권 세력을 친일파에서 친미파로 고스란히 이어지는 한통속의 적폐로 매도해버린다면, 이는 피상적 단견일 뿐이다. 역사는 결코 단선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친일파 낙인찍기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동안 너무 오래도록 미루어져온 사회정의의 구현에 대한 열망이 아로새겨 있는 것이다. 지나친 민족주의적 편향을 제하고 본다면, 친일파(부일파)의 죄과는 명확하다. 그들은 강자에게 붙어 약자를 괴롭혔다. 어쩌면 민족에 대한 배반은 부차적인 문제일 수 있다. 만약 친일파가 문명국가에 적합한 도덕적 기준을 내팽개치고 늘 권력에 불나방처럼 들러붙던 이 땅의 비열한 기득권 세력을 뜻한다면, 그것은 일제강점기의 질곡을 뛰어넘어 대한민국의 포괄적인 사회개혁을 요구하는 선명한 구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친일파 낙인찍기가 이처럼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한 긍정적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데 반해, 빨갱이 낙인찍기는 어떠한 긍정적인 면도 보여주지 못한다. 1948년 4월 제주민의 무장봉기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빨갱이’라는 말은 이미 일제강점기에도 호전적인 우익세력에 의해 빈번히 사용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저주의 말 한마디로 인해 그간 얼마나 많은 안타까운 희생이 초래되었는지 우리는 감히 추산조차 할 수 없다. 빨갱이 지목과 친일파 지목은 그 역사적 무게가 전혀 같지 않다. 대체 친일파로 지목되었다고 해서 대단한 희생을 치른 사례가 어디 있었던가?

혹자는 이러한 지적에 대해 ‘반공주의의 확립이라는 긍정적 면모도 있지 않은가’라는 반론을 펼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반공주의 없이도 인권과 민주주의 등 보편적 견지에 입각하여 얼마든지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이 가능하다. 백보 양보하여 반공주의의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으로 친일과 독재의 문제를 덮어버리거나 축소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역사적으로 골이 깊은 두 가지 문제를 상호비교하여 성찰하는 일은 필요할 수 있다. 그렇지만 비교가능하다는 점이 ‘어차피 오십보백보’라는 저열한 상대주의로 귀결되거나, 심지어 책임전가의 논리로 빗나가서는 결코 안 된다.

독일 역사가 에른스트 놀테와 프랑스 역사가 프랑수와 퓌레의 서신 교환이 시사점을 준다. 놀테는 나치의 악행을 볼셰비키 혁명에 대한 반발로, 즉 유럽 좌우세력 간의 이념적 대결로 해석했다가 1980년대 중반 독일 지성계를 강타한 소위 ‘역사가논쟁’을 촉발시킨 당사자이며, 퓌레는 프랑스혁명에 대한 관례적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며 공산주의에 대한 좌파 지식인들의 환상을 깨뜨린 보수파 역사가다.

철저한 반공주의자인 이 두 역사가는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비교 가능성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는데, 퓌레는 좌우 양편의 극단체제가 유사성과 연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십분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논리가 자칫 독일 민족의 고유한 죄를 상대화할 수 있다며 놀테를 비판했다.

소련 공산당과 경쟁하며 닮아갔다는 점이 나치의 죄과를 감소시키지는 않는다는 것이 퓌레의 생각이었다. 그의 논리를 이 땅에 대입해본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북한 체제의 사악함이 친일과 독재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실로 빨갱이 낙인찍기는 친일과 독재의 과거를 희석시키는 역할을 해왔지만,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친일파 문제를 거론함으로써 좌파 세력의 범죄가 은폐되어 왔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따라서 친일파 논의는 민족주의적 편향에서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좀 더 지속될 필요가 있다. 언어는 열망을 담고 있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빨갱이나 종북 운운하는 발언은 관련법을 만들어서라도 즉각 금지시켜야한다. 어설픈 양비론으로 미룰 일이 아니다.

부산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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