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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불상 없는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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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이나 불탑이 많아 ‘지상의 불국토’로 불리는 경주 남산에는 머리 없는 부처님이 수두룩하다. 약수골의 여래좌불과 마애대불, 열암골의 좌불, 옷주름이 화려한 삼릉골의 좌불 등등. 발 닿는 곳마다 머리를 비운 채 하늘과 산을 머리 삼아 몸으로 떠받치고 계신 부처님을 만난다.

불상이 이처럼 훼손된 건 조선조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의 영향이 크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땀 흘리는 불상에 관한 기록이 적잖이 눈에 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유생들이 민심을 어지럽힌다며 불상을 훼손했다고 한다. 성종 20년(1489년)에는 ‘인수왕대비가 불상을 만들게 하여 정업원에 보냈는데, 유생 이벽 등이 불상을 가져다 태워버렸다’는 기사도 나온다. 몽골 등 외적의 침입도 불상 훼손의 한 요인이다. 1965년 경주 분황사의 우물 속에서 통일신라시대 때 만든 석불들이 발견됐는데, 한결같이 머리가 잘려져 있었다. 이 불상들은 현재 경주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머리뿐 아니라 몸 전체가 사라진 불상들도 있다. 지름 2m가량의 좌대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삼화령(三花嶺)의 미륵불이 한 예다. 삼화령은 금오봉, 고위봉과 함께 삼각형을 이룬 남산의 3대 봉우리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선덕여왕 때 도중사의 승려 생의의 꿈에 한 스님이 나타나 생의를 남산 남쪽 골짜기로 데려간 뒤 “내가 여기에 묻혀 있으니 나를 파내어 고개 위에 안치해 달라”고 했다. 이튿날 땅을 파보니 미륵불이 나와 삼화령 꼭대기에 모시고 절을 지어 공양했다고 한다. 좌대로만 존재하는 삼화령의 ‘불상 없는 불상’으로 추정된다.

삼화령의 미륵불은 아마 누군가 훼손했거나 다른 곳으로 옮겼을 것이다. 그게 자연스러운 판단이겠지만, ‘불상 없는 불상’의 존재 의미를 달리 해석해보면 어떨까. 적멸(寂滅). 부처님이 자신을 비움으로써 깨달은 진리를 드러냈다고 말이다. 그 비운 자리에는 있는 그대로의 푸른 자연이 대신 들어찼다. 청정 법신(法身)인 셈이다. 스스로를 내려놓고 중생을 받드는 하심(下心)이기도 하다.
삶의 이치도 마찬가지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만 보려는 미국의 ‘선비핵화, 후보상’ 주장은 반발을 부르기 마련이다. 비핵화와 상응조치의 단계적, 동시적 이행을 고집하는 북한 또한 미국 조야의 완고한 벽을 넘기 어렵다. 비우지 않고는 채울 수 없듯이, 양보 없인 대화는 불가능하다. 12일 부처님 오신 날을 보내며 든 생각이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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