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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수산칼럼] 정화함대와 란가쿠(蘭學), 대항해시대 교훈 /이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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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05-07 19:23:09
  •  |  본지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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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정화함대가 원정을 계속했다면 지금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14세기 모두 일곱 차례의 대원정을 통해 아프리카까지 다녀왔던 정화함대는 세계 최강의 함대였다. 생각만큼 소득이 신통치 않은 데다 명나라보다 더 좋은 세상이 없다는 확신까지 더해져 정화함대의 대원정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정화함대가 원정을 계속 이어갔다면 ‘유럽 중심의 근현대 역사가 바뀌었을지 모른다’고 역사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역사를 바꿀 정도라고 판단했다면, 원정의 지속 여부에 뭔가 특별한 세계사적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역사학자들은 그 연결점을 ‘해양 이용에 대한 혜안의 부재’로 보고 있다.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의 대양항해 원정경험을 보유하고도 명나라는 해양 이용의 중요성을 간과했다. 당대 최고의 국력을 바탕으로 수백 척의 군함과 수만 명의 승선원을 조달하며 수십 년에 걸친 항해를 지원하고도, 비용 소모적이라는 일차원적 판단으로 원정을 그만두고 만 것이다.

정화함대 대원정이 끝나고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경제를 찾아 필사적으로 바다로 향했던 유럽 제국(諸國)에 의해 역사는 반전된다. 원정을 새로운 가치 창출의 기회로 활용하지 못했던 명나라와 달리 유럽은 해양 진출에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발견했다.

너도나도 함대를 앞세워 해양영토 확장에 나서며 막대한 경제 가치를 창출했다. 수백 년간 이어진 ‘대항해시대’의 시작이었다. 아메리카 설탕 무역부터 인도 면직물 무역까지 시대를 따라 모양을 달리하기는 하였지만, 이들 모두는 세계 경제의 흐름을 새롭게 써 나가면서 국가 간 권력구도도 재편했다.

대항해시대 말기 해양 강국 중의 하나였던 네덜란드는 교역 대상국의 확장을 위해 극동아시아에 관심을 가졌다. 그 전초기지로 일본을 선택한다. 에도막부 말기의 일본은 네덜란드를 부국강병용 실학(實學) 보급처로 이용했다. 서양의학 보급을 위한 ‘네덜란드 배우기’가 란가쿠(蘭學)라는 학풍으로까지 자리 잡으면서 일본 사회의 획기적 변환을 가져왔다.

‘란가쿠’와 해양 진출 전략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일본은 아시아권에서 가장 체계적으로 그리고 가장 빨리 유럽의 신기술들을 받아들였고 이는 곧 일본이 아시아권의 맹주로 부상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당대 최강의 대양함대를 보유하고도 스스로 해양진출을 포기했던 명나라와 그후 이어지는 중국의 쇠퇴. 적극적인 해양교류를 통해 극동아시아의 이름 없는 변방국가에서 세계무대 주요 국가로 등장한 일본. 이는 근대와 현대를 가로지르는 아시아판 해양사의 극명한 사례이자,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국가의 흥망이 좌우됨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과서인 셈이다.

최근 들어 일본 고베항이 획기적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2017년 일본 경제산업성이 선언한 ‘수소기본전략’에 따르면 고베항은 호주로부터 수입하는 액체수소의 국내 보급 전진기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차세대 친환경 에너지로 부상한 수소에너지 활용에 방점을 두고, 글로벌 수소경제 가치사슬에서 핵심역할을 하겠다는 복안으로 분석된다.

나아가 가와사키중공업은 고베항을 모항으로 운항 예정인 액체수소운송선박을 건조 중인데, 세계 최초의 대양 항해 수소운송선박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귀동냥으로 듣고만 있기에는 조선해양산업과 항만을 중심으로 수소경제 가치사슬 주도권을 준비하는 그들의 행보가 너무나 구체적이고 도전적이다.

물리적 경계가 모호해지고 세계가 단일 유기체처럼 작동하는 현대사회는 첨단기술이나 신산업에 대한 선점효과가 더욱 부각되어 좀처럼 역전을 허용하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준비 없이 맞이하는 미래 사회의 모습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대항해시대 주역들은 단지 공간적 의미로서만 바다를 활용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최상의 경제 가치를 찾아내어 선점하고 새로운 경제 체제로 편입시키는 가치사슬의 역할을 이해했다.

그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러야 했던 치열한 경쟁 그 자체가 대항해시대이며, 해양을 통한 가치선점 전략보유 여부가 국가의 흥망을 좌우해 왔다는 것이 교훈이다.

부산의 슬로건은 ‘세계해양수도’이다. 대형 항구만 보유했다고 해양수도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전 세계 해양이 하나로 움직이는 오늘날, 진정한 의미의 ‘수도’로 자리매김할 방법이 무엇인지, 해양을 통해 확보해야할 ‘미래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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