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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아이들은 스스로 자라고 싶어한다 /조갑룡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5-06 19:21:01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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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5월의 하늘…. 이즈음의 신록에는 우리 사람의 마음에 참다운 기쁨과 위안을 주는 이상한 힘이 있는 듯하다.’ 이양하 선생의‘신록예찬’이다.

새삼스럽다. 지리산 자락 고향의 어느 봄날, 풍금에 빠졌던 10살 까까머리의 추억이 삶의 신록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풍금 연주 소리에 반해 우리 교실에 풍금이 있는 날이면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고향의 봄’과 씨름을 했다.

하지만 왼손이 담당하는 베이스를 선생님처럼 연주할 수가 없어 영 시원찮았다. 우리 선생님은 왼손의 엄지와 새끼손가락으로 한 옥타브 차이로 두 음을 번갈아 누르면서 베이스를 넣었는데 손가락이 짧은 나는 불가능했다. 손가락에 가는 나뭇가지를 대고 고무줄로 묶어보기도 하는 등 혼자서 별별 궁리를 다 해봤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나, 삶에서 최고의 매력은 끝까지 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결국 굵은 철사를 이용해서 왼손 엄지손가락의 길이를 늘이는데 성공했다. 나만의 ‘웨어러블 디바이스(wearable device)’였다. 그때 그 순간의 감흥은 미래를 향한 놀라운 여행의 동반자가 되어주고 있다.

미국의 뇌 과학자 켈리 램버트에 따르면 우리의 뇌에는 ‘정신적 시간 여행’을 위한 시스템이 내장되어 있는데, 어린 시절 특정한 일이 있었을 때의 느낌을 만나면 뇌의 정서적인 부분이 활성화되면서 당시 경험한 행복했던 감정으로 돌아가고, 그것은 알게 모르게 삶의 에너지가 된다고 한다. 아이들이 성취감을 느꼈던 행동에 대해 반복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오늘이 내 인생의 가장 어린 날이다’ ‘피할 수 없을 때는 즐겨라’와 같은 결정적 구절들이 삶의 여울목에서 위로와 영감을 주듯,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영·유아기에 뒤집기와 일어서기 그리고 걸음마를 하면서 나의 노력으로 얻은 원초적 환희와 감동 또한 마찬가지다.

그 옛날 우리 엄마는 아이가 일어나 걸음마를 배울 때면 옆에서 용기를 북돋우며 박수를 쳤다. 아이는 엎어지고 자빠져 울면서도 다시 일어난다. 힘이 들어야 힘이 생기고 일어서야 더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DNA는 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어느 날 눈과 입술에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스스로 일어선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동기유발을 시키는 요소의 으뜸은 자발성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셈이다. 그러나 지금은 일어서고자 하는 의지와 훈련의 기회를 보행기가 빼앗아 가 버렸다. 기지도 못 하는 아이들이 보행기 위에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걸음걸이를 떼어야 한다. 자기 효능감을 높이고 생존 기술을 연마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고 있는 것이다. 처음으로 일어선 순간의 환희는 아이의 회복탄력성과 같은 인격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스로 일어서게 해야 한다. 공자는 말했다, 기쁨을 기약하는 자기 주도적 배움이 참된 공부라고.

지난해 11월 말부터 한동안 세상을 달궜던 ‘스카이 캐슬’에 사는 아이들, 과잉양육 사회에서 오로지 SKY대학을 향해 정해진 트랙을 강제로 달리는 그들 또한 보행기를 탄 것과 무엇이 다르랴. 내 속에 내가 없으니 드라마 속 강준상처럼 ‘내가 누구인지 나도 모르겠다’는 회피형 인간으로 자라는 건 당연한 결과다. 강준상은 자기 스스로가 주도할 수 있는 현장이 없었다. 나의 삶이 나의 생명력으로 돌파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오월은 푸르구나 / 우리들은 자란다….’ 아이들은 자연이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함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라고 싶다. ‘자란다’는 말은 ‘잘’이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우리들은 자란다’라는 것은 ‘그대로 그렇게 자기다움을 가지고 잘 자라고 싶다’는 말이다.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스스로 살아보는 일이고 그러면 언젠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해답을 가르쳐줄 것이라 했다. 신록을 닮은 우리 아이, 스스로가 의미 있는 성취의 기억을 만들어내고, 자기만의 깨달음에 밑줄을 그을 수 있도록 내면 깊은 곳에서 솟아나오는 것, 바로 그것대로 살게 하면 안 될까. 도대체 그 일이 그토록 어려운가.

부산시영재교육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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