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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오지랖’도 ‘당사자’도 아닌 /차창훈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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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05-01 19:32:15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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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는 필리페 4세의 사랑을 받으며 17세기 스페인 미술의 정점에 도달한 화가다. 그는 화려하고 다채로운 붓놀림과 미묘한 색의 조화를 이용해 질감, 공간, 빛과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연출하면서 독특한 시각적 인상을 강조하는 걸작들을 남겼다. 서양미술사에서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의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특히 그가 남긴 작품 중 ‘시녀들(1656)’은 푸코와 같은 철학자들에게 인식론 논쟁 소재를 던져주었는데, ‘재현’의 문제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즉 가시성의 구도를 회화의 형태로 실감나게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녀들’의 그림은 매우 독특한 시선 구도로 이뤄져 있다. 관람자는 자신이 화가의 작업실이 있는 궁정 안에 들어온 느낌을 받는다. 화폭의 가까운 곳에 어린 공주와 그녀를 둘러싼 시녀들을 포함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공주와 시녀들 왼편에 화가 자신이 관람자에게 시선을 보내고 있다(보통의 그림은 화가 자신의 시선에 따라 사물들이 펼쳐지는 구도이지만). 다시 말해 그림 속의 화가는 그림을 관람하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고, 관람자는 화가의 시선이 아닌 양 17세기 스페인 궁정 안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면 그림 속 화가가 그리고 있는 대상(관람자의 시선)은 누구란 말인가. 우리는 이 그림의 중앙 부분에 작게 그려진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을 찾아내어야 답을 얻는다. 거울 속에서 관람자의 시선과 일치하는 필리페 4세 부부의 모습을 희미하게 확인할 수 있다. 벨라스케스는 자신이 화폭에 담는 대상인 필리페 4세 시선의 관점에서 ‘시녀들’을 구성한 것이다.

지난달 1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제14기 최고인민회의의 시정연설에서 교착에 빠진 북미협상 국면에서 처음으로 공식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미국에게는 제재 해제에 집착하지 않겠지만, 미국이 기존 계산법을 바꾼다면 제3차 북미 정상회담에 응할 용의가 있고, 그 시한은 올 연말까지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한국 정부에게는 ‘오지랖’ 넓은 중재자 혹은 촉진자 행세를 하지 말고,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될 것을 촉구했다. 미국 눈치보고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재개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정부에 대한 불만을 쏟아낸 것이기도 하고, 하노이회담의 결렬을 은근히 한국정부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것으로도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는 하노이회담 결렬을 둘러싸고 북미 양국에서 강성 기류가 고조되던 상황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의 모멘텀을 유지시켰다는 점에서 일단 성공적이라 평가된다. 아울러 CNN이 보도하고 청와대가 확인해주었다시피 문 대통령이 갖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북한에 전달할 수 있는 남북정상회담의 개최가 고대된다.

다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로 돌아간다. ‘시녀들’이 재현한 시선의 방향은 관람자(필리페 4세)에게 집중되어 있다. 구성과 질서의 중심은 관람자의 시선이고, 이는 복잡한 그림의 현상 속에 은폐돼 있다. 필자에게 이 그림은 현재 남·북·미·중·러·일의 시각과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현’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한국은 이 그림 속에 그려진 화가처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구성하는 하나의 당사자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자면 한국정부는 북한의 비난처럼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당사자’는 아니다. 4·27 판문점회담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가 북측의 불참으로 반쪽짜리 행사가 됐고, 지난 한 해 진전시킨 남과 북의 많은 협력사업이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북측은 남북관계 개선을 북미 협상 실패를 전가하거나 자신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고 있지 않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미셸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그림 속의 거울이 비가시적인 것을 비추면서 가시화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설명한다. 그림 속 관람자의 시선이 모두의 시선을 그림 밖에서 하나로 모으면서 ‘재현’을 가능하게 하듯이, 한국정부도 북한과 미국 그리고 주변국들의 시각과 이해관계를 하나로 모으면서 비핵화의 해법을 찾아 평화의 시대를 구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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