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가 한 호화 크루즈선 내에 있는 ‘벨벳라인’과 ‘황금카드’라는 걸 소개한 적 있다. 4200여 명이 정원인 이 배에는 300명 안팎의 VVIP 승객을 위한 ‘헤이븐(The Haven, 안식처)’이라는 공간이 있는데, 일반인을 통제하기 위해 벨벳 재질의 줄을 쳐놨고 출입하려면 별도 탑승권이 있어야 한다. 황금카드 소지자는 제일 먼저 승선하고 수영장 일광욕장 식당 공연장을 전용으로 이용하는 특권을 누린다. 유사시 하선도 최우선이다. 그러니 일반 승객들과 마주칠 이유도, 외부 시선에 신경 쓸 필요도 없다. 그들만의 세상이다.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남편 오충진 변호사는 지난주말 페이스북에 “(주식이 아니라) 강남에 35억짜리 아파트 하나 갖고 있었으면 욕 안 먹었을텐데”라는 글을 올렸다. 이 후보자는 본인 명의로 6억, 남편은 29억 원에 달하는 주식을 갖고 있었다. 대다수 국민은 현직 판사가 그 많은 주식을 거래했다는 사실, 그것도 자신의 재판과 관련 있는 기업의 주식을 사고 팔았다는 데 놀랐다. 판사라면 이해충돌의 여지가 있는 재판은 회피하는 게 옳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 부부는 초점이 어긋난 해명을 하고 있다.

이 후보자는 강원도 화천 이발사의 딸로 태어나 부산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자수성가 흙수저의 전형이다. 도청 공무원 아들인 오 변호사 역시 성장과정은 금수저와 거리가 있다. 사실 이들이 불법을 저질렀다는 증거는 없거니와 특권적 삶을 누렸다는 주변의 비난도 없다. 오히려 판결을 통해 약자와 소수자 보호에 힘썼다는 평가가 있다. 단지 그들의 눈높이가 일반 서민과 다를 뿐이다. 종종 드러나는 전관 변호사의 수입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정운호 게이트’ 당시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의 수임료는 100억 원대였다. 안대희 전 대법관도 퇴임 후 5개월간 16억 원을 벌었다. 그러니 50대 전후 부부 법조인으로선 “이 정도 자산이 왜 잘못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전세 5000만 원 올려 유학비 댔다”(조동호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 “집 세 채가 뭐가 문제냐”(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강남 살아 봐서 안다”(장하성 주중 대사)는 발언엔 평소 그들의 의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제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자에 대한 ‘부적격’ 응답이 55%로 ‘적격’의 배 가까이 된다. 부와 권력을 함께 좇는 고위 공직 후보자를 보는 국민의 시선이 이처럼 냉정하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