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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역사 외면한 부산시의 무리수 /황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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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철거라니, 부산시가 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부산시가 지난 12일 부산 동구 정발 장군 동상 앞에 설치된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기습 철거하자 시민들이 보인 반응이다. 불과 한 달 전인 3·1절 100주년 기념행사 때만 해도 오거돈 부산시장은 “부산시는 일제강점하 강제동원된 분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힘을 모아 그분들의 삶에 새겨진 비통함을 풀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시가 외교적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앞장서서 해결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강제력을 동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하지만 시는 어느 때보다 무리하게 노동자상을 철거했다. 행정대집행의 권한은 기초자치단체장인 동구청장에게 있으나, 시는 이를 직접 집행하는 ‘무리수’를 뒀다. 시 관계자는 “행정대집행 권한은 시가 동구에 위임한 것이므로, 불법 시설물에 대해 시가 권한을 행사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방자치법은 ‘지자체가 위임사무를 명백히 게을리하고 있다고 인정되면 시장·도지사가 서면으로 이행을 명령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시는 동구에 서면으로 이행명령을 하지 않았다. 동구 관계자는 “시가 지자체의 자치권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시가 이처럼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고, 시민단체의 반발을 자초하면서까지 행정대집행에 나선 건 다음 달 1일 일왕 즉위식과 G20 정상회의 등을 앞두고 한일관계 개선에 나선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정부의 의지와 별개로 애초부터 역사 문제에 대한 시의 입장이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시민 앞에서는 “강제동원된 분들의 비통함을 풀어나가겠다”고 해놓고, 뒤로는 그 뜻을 철회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다. 노동자상 기습 철거를 두고 시민단체가 “앞에서는 대화하자고 하고, 뒤로는 노동자상을 강탈해갔다”고 지적한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오 시장은 3·1절 기념식에서 “역사의 진실보다 무거운 법과 절차는 없다고 믿는다”고 했다. 이번 사태를 통해 이 묵직한 말이 ‘법적 절차’라는 명분 앞에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졌는지, 시민들은 똑똑히 지켜봤을 것이다.

사회부 hwangyj@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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