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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반(反)재벌 정서의 출발점 /정선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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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4-14 19:26:39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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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미국에서 타계했다는 소식은 상당수 국민의 심경을 착잡하게 했다. 그는 창업세대는 아니지만 반세기 동안 대한항공에 몸담아 우리나라 항공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말년에 한진해운 사태나 자녀와 부인의 일탈행위로 적지 않은 마음고생을 했다. 지난달 말에는 대한항공 주주들의 반대로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하기도 했다. 어쩌면 몇 년 사이에 조 회장에게 벌어진 일들은 한국 재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압축판인지도 모른다.

과거 재벌이 국민의 존경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몇 년 전까지만해도 여론조사에서 재벌 총수의 이름은 존경의 대상에서 빠지지 않고 상위권에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상황이 변했다. 재벌이나 재벌 총수에 대해 존경심을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최근에는 그런 여론조사 자체가 아예 사라지기도 했지만 재벌이나 재벌 총수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 달라졌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재벌은 한국경제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해왔다. 재벌은 자본 불모지의 척박한 한국경제를 세계 11위의 경제 강국으로 이끈 주역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국민은 재벌의 성공과 재벌 총수의 기업가 정신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재벌이나 재벌 총수들이 경제적이든, 사회적이든 과실을 저질러도 잘잘못을 따지기 보다는 너그러이 보아 넘겼다. 하지만 지금은 재벌의 조그만 잘못에도 여론은 가혹하리만큼 매섭게 뭇매를 친다.

혹자는 가진 자에 대한 질투심이라고 폄훼하지만 재벌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바뀐 배경을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재벌이 한국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계속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재벌에 대한 인식 변화의 가장 큰 이유는 거시적인 경제성장과 국민이 느끼는 미시적 체감경제의 괴리감이 커진 때문이다. 말하자면 경제는 성장했는데 서민의 삶은 팍팍해졌다는 것이다. 많은 국민은 그 이유를 성장의 과실이 상위층에 집중된 때문이라고 믿는다. 국세청의 2017년 기준 종합소득 통계를 보면 최상위 5% 계층이 벌어들인 순소득이 전체의 44%를 차지했다. 최상위 계층은 재벌이라는 인식이 반재벌 정서의 출발점이다.

과도하게 이익추구에 매몰된 재벌의 우월적 경영방식도 재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진 배경이다. 한국경제의 시스템은 대기업을 정점으로 중소기업과 소상인이 수직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용역과 서비스를 납품하고, 소상인은 대기업의 제품을 가져다 파는 구조다. 그런데 한국은행의 통계를 보면 지난해 대기업의 이익률은 8%대인 반면 중소기업은 4%대, 소상인은 2%대에 불과하다. 중소기업과 소상인이 챙겨야 할 이익이 대기업으로 넘어간 셈이다. 물론 대기업들은 시장 개척과 기술 개발을 주도하니 이익률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이익집중은 풀뿌리 경제를 초토화시켜 결국 대기업의 생존 가능성도 보장하기 어렵게 했다. 결국 재벌 총수나 일가족의 일탈행위가 재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게 만든 이유가 아닐까 싶다.

창업세대에서 승계세대로 넘어가면서 벌어진 일탈행위는 사회적 반감을 더욱 증폭시킨 기폭제로 작용했다. 국민은 재벌의 창업세대가 한국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승계세대에 대해서는 부모 잘 만나서 혜택을 입은 금수저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 때문에 승계세대의 일탈행위에 대해서는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보통사람보다 더 엄격한 잣대로 그들을 단죄하려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는 이유이다. 결국 재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시대감정의 변화에 연유하는 것이 아니라 재벌이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얘기다.
문제점을 알면 해법도 찾아낼 수 있다. 재벌이 국민의 사랑을 받고 건강한 성장을 하려면 재벌 스스로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하는지 모색해야 한다. 대부분의 재벌이 차세대로 승계하는 시기에 와있다. 환골탈태의 노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재벌의 미래는 장담하기 힘들다. 어느 노재벌총수가 쓸쓸히 타국에서 유명을 달리한 현실을 보면서 다시 한번 재벌의 변화가 절실함을 느낀다.

재벌닷컴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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