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내가 마지막으로 읽었던 책이 뭐였지?’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지금 반드시 책을 읽어야만 하거나 그것을 삶에서 의무적으로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내 초등학교 시절은 꽤 많은 독서를 권장하던 시대였다고 기억한다. 독서하고 독후감을 써내는 숙제가 참 많았고, 심지어 방학이 끝날 무렵 밀린 독서 감상평 숙제를 위해 참으로 순식간에 여러 권의 책을 읽어내야 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읽는 행위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것인지 아니면 어린 시절 독후감의 압박에 시달렸던 기억인지 누군가가 나에게 ‘책 읽는 것을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한다면 내 대답은 항상 ‘아니요’였다.

그런데 고등학교 시절 3년 동안은 정말 많은 양의 독서를 했었다.

입시 공부를 핑계로 주말 내내 시내 도서관에서 온종일 책을 읽기도 했고, 또 방과후 자율 학습 시간에도 소설과 여러 사회과학 서적을 읽다 선생님에게 된통 혼이 난 적이 참 부지기수였다.

그래서인지 고등학교 동창들을 가끔 만나 이런저런 회포를 풀 때면 친구들은 나의 취미를 독서로 생각하고 항상 책 읽기를 즐거움으로 삼았던 친구로 기억한다.

‘내가 책을 좋아했다고?’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친구들의 기억이다. 가만히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물론 참 많은 책을 만났고 최대한 많은 책을 읽으려 노력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책 읽기가 재미있었고 그것이 내 취미라고 느꼈던 기억은 아쉽게도 없다.

사춘기 시절 모두가 한 번쯤 경험하듯, 세상에 대해 궁금한 것은 더 많아지고 이유 모를 반항심도 점점 늘어 가는데, 의문이나 해답에 대해 답을 구하기 힘들어 답답해 하는 때가 있지 않은가. 학교생활에 대한 회의와 갈증은 갈수록 커져만 가고 말이다.

나는 그에 대한 반항 심리로 더 많은 독서를 했었고, 입시를 치르기까지의 그 긴 시간 역시 무작정 글을 읽는 행위를 탈출구 삼아 회피하고 싶어 했다.

돌이켜 떠올려 보면 무척이나 유치하고 소심한 행동이었지만, 어쨌든 그것은 학생 시절 나의 책 읽기에 대한 기억의 전부이기도 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 책에 관한 이런 경험과도 멀어질 수 있겠다 생각했다. 독서를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세상을 살아갈 수 있으니까.

나는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흐른 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생겼다. 영화음악을 만드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영화 시나리오를 읽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한두 번의 정독 정도가 아닌 아주 여러 번 말이다.

특히나 시나리오가 계속 수정되며 제본으로 넘어올 때면 무척이나 심란했다.

그런데 어느 날 차를 운전하며 집으로 가는 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시나리오를 차에서 누군가가 읽어주면 너무 좋겠다’라는 생각 말이다. 한창 바쁘던 때라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으로 갑자기 떠 오른 생각일까? 생각해 볼수록 아니었다.

참으로 신기하게 나는 분명 새 시나리오의 내용을 기다리고 있었다. 단지 그것을 읽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 이야기를 분명히 귀로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독서라는 행위가 나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그것이 시각이 아닌 청각적인 행위를 통해서라면.

집에 돌아와서 아내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영화 작업과 회의가 끝나면 집에 돌아와 나는 아이를 돌보고 아내는 나와 아이에게 시나리오를 읽어주었다.

그리고 세상에! 나는 그 순간 독서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었음을 처음 내 삶에서 깨닫게 되었다. 무척이나 흥미진진했고 내가 글 읽기를 즐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그 경험 이후 적어도 나는 아이에게 독서를 권장하거나 또래가 읽어야만 한다는 유명 유아 책들을 의무적으로 사지 않게 되었다.

어떤 책이든 아이가 관심을 가진다면, 나는 다만,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고 있다. 그동안에 아이가 다른 놀이를 하더라도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고서 말이다. 글자를 읽는 능력이 또래에 비해 다소 서툴게 되더라도 역시 상관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조금은 느릴 수도 있겠지만, 이 아이가 언젠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하세요?’ 같은 질문에 ‘네’라고 대답할 수만 있다면 정말 멋지지 않은가.

성신여대 현대실용음악학과 교수·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