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주 40시간제를 시행할까? 아니면 주 52시간제일까? 근래 갑자기 “주 52시간제가 시행된다”고 떠들썩하기 전까지만 해도 분명 우리는 주 40시간제로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주 40시간제가 맞다(근로기준법 제50조 제1항). 근로자 동의하에 주 40시간을 넘게 일을 시킬 수는 있지만, 대신 시급을 50% 더 줘야 한다(근로기준법 제56조 제1항). 그런데 시급을 50% 올려주더라도 주 52시간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 근로자가 아무리 일을 하겠다고 해도 사장이 주 52시간을 넘게 일을 시키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는 범죄가 된다(근로기준법 제110조). 그래서 주 52시간제라는 말이 나왔다.
왜 근로자가 스스로 일을 하겠다고 해도 법은 금지시켜 놨을까. 그것이 헌법 제32조 제3항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노동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불편해도 안전벨트 착용을 강제하는 것처럼, 인간의 존엄성 보장을 위해 주 52시간을 강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근로기준법은 동시에 이 인간다운 노동의 조건에 예외를 두었다. 바로 탄력근로제다.

탄력근로제를 쉽게 요약하면, 몇 개월을 평균해서 주 52시간만 맞추면 그 중 몇 주는 주 52시간을 초과해도 허용해주는 제도다. 일이라는 게 많을 때도 있고 적을 때도 있으니 나름 합리적인 제도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건 사장 입장에서나 그런 것이고, 근로자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왜일까?

먼저 탄력근로제를 하면 월급이 줄어든다. 서두에 쓴 것처럼 원래 주 40시간을 초과해서 연장근로를 하면 시급을 50% 올려 받아야 한다(근로기준법 제56조 제1항). 이를 잔업수당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작은 사업장에선 이것조차 안 지키는 곳이 많은데, 50% 올려주지 않는 것도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범죄다(근로기준법 제110조). 그런데 탄력근로제를 하면 한 달 내내 주 40시간을 넘게 일을 시켜도 50% 할증임금을 안 줘도 된다. 다음 달에 그만큼 일을 적게 시키는 걸로 퉁치는 것이다. 탄력근로제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다음 달에 일을 적게 해도 일단 주 40시간을 넘으면 시급 50%를 더 받았을 것이다.

월급은 줄어드는데 몸은 더 고달파진다. 매일 오후 6시에 딱딱 마치는 것이, 어느 날은 오후 8시에 마치고 어느 날은 오후 5시에 마치는 것보다 좋다는 걸 해 본 사람은 안다. 도대체 언제 하루 일과를 마칠지 알 수 없는 인생은 참으로 고달프다. 친구나 가족과 저녁약속도 미리 정해두기 어렵고, 학원을 다닐 수도 없다. 하다 못해 일일 연속극도 꾸준히 볼 수가 없다. 그런데 탄력근로제를 하면 사장이 통보하는 대로 퇴근시간이 들쭉날쭉이 된다. 내 시간을 내가 설계할 수 없는 고달픈 인생이다.

과로사 위험도 증가한다. 장시간 근로를 계속하면 뇌경색이나 심근경색 위험이 크게 증가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의학상식이다. 노동부 고시에는 아예 3개월간 주 60시간 이상 근무하다 뇌경색이나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 산재로 인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탄력근로제를 하면 몇 달간 계속해서 주 64시간씩 일을 시켜도 합법이 된다.

반대로 사장 입장에선 이렇게 좋은 게 없다. 탄력근로제를 하면 일을 시키고 싶을 때 많이 시킬 수 있고, 심지어 월급도 적게 줘도 된다. 단점은? 딱히 없다. 그래도 현행법상 사장 마음대로 도입할 수는 없다. 번거롭게도 미리 매일 근무시간표를 정해 노조나 근로자 대표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근로기준법 제51조 제2항). 그런데 얼마 전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경영계 숙원이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합의했다. 국회는 곧 쉬운 도입절차까지 얹어서 개정안을 올렸다(민주당 한정애 의원 대표발의).

이런 제도가 있는지조차 몰랐던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근래 정부와 경영계의 적극 홍보로 많은 사장이 탄력근로 도입을 검토 중이다. 노조나 근로자 대표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지만, 우리나라 근로자 90%는 노조가 없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선 대부분 누군지도 모르는 ‘근로자 대표’가 사장의 요구대로 ‘턱턱’ 합의해주고 있다. 당연히 이는 근로기준법 위반이지만, 그게 현실이다.

변호사·법무법인 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