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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축구장 인종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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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흑인선수라고 하면, 흔히 재키 로빈슨이 꼽힌다. 1947년 메이저리그에 흑인 최초로 입성해 성공한 주인공이다. 그는 데뷔 첫해부터 극심한 인종차별에 시달렸다. 관중의 야유와 욕설을 듣기 일쑤였고, 그의 소속팀 브루클린 다저스(현 LA 다저스)는 상대팀에게 경기를 거부당하는 일도 있었다. 원정경기 때는 수많은 협박편지가 날아들어 동료들이 그를 보호하려고 얼굴에 검은색을 칠하고 출전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그런 역경 속에서도 로빈슨은 신인상과 최우수선수상을 따냈고, 1957년까지 팀을 6차례나 월드시리즈에 올려놨다. 그가 허물기 시작한 메이저리그의 인종장벽은 1959년 레드삭스팀이 마지막으로 흑인선수 입단금지를 없애면서 완전히 무너졌다. 이 같은 ‘로빈슨 효과’는 미국의 사회적 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54년 대법원에서 인종차별은 위헌이란 판결이 나왔고, 3년 후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이 제정된 게 대표적이다.

로빈슨이 별세한 지 올해로 47년이 됐지만, 예나 지금이나 스포츠에서 인종차별 행위가 여전하다. 그중에서도 축구는 유달리 심한 것 같다. 50여년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흑인 선수가 골을 넣은 후 관중의 총에 맞아 숨지는 참사까지 빚어졌으니 말이다. 1996년에는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의 인종차별적 발언이 한바탕 파동을 일으킨 적도 있다.

근래에도 유럽 프로축구 무대에서 인종차별 행위가 끊이지 않는다. 손흥민(토트넘)은 이미 몇 차례 당했고 이강인(발렌시아), 이집트 출신의 모하메드 살라(리버풀) 등도 피해를 입었다. 지난달에는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흑인선수들이 몬테네그로와의 원정 A매치에서 상대 관중에게 인종차별을 당하며 더 화제가 됐다. 이쯤 되니, 국제축구연맹(FIFA)의 인종차별 금지·징계 규정이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상황이 이렇자 유럽 축구계가 보다 강력한 대응을 천명하고 나섰다는 소식이다. 최근 UEFA 알렉산데르 체페린 회장이 ‘경기 도중 관중의 인종차별 행위가 있으면 경기를 중단시킬 것을 심판에게 요청하겠다’고 공언하면서다. 여기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감독들은 한술 더 떴다. 첼시와 리버풀, 토트넘 등의 사령탑들이 “경기장에서 인종차별 구호가 나오면 선수들을 그라운드 밖으로 철수시킬 준비가 돼 있다”고 가세한 것이다. 실제 그런 사태가 일어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일부의 인종차별 행위로 경기가 중단되는 것은 관중이나 팀, 선수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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