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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데스크시각] 길, 만든 정 가꾼 정 /이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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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03-27 19:44:41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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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말 아프리카 탄자니아 래톨리에서 발굴 작업을 하던 인류학자 리처드 리키는 화산재가 굳은 암석층에서 화석을 발견했다. 360만 년 전 초기 인류가 두 발로 걸어간 발자국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화석이었다. 인류 조상의 직립 보행을 보여주는 첫 증거였다. 화산재가 날려 쌓이는 아프리카의 평원을 두 발로 뚜벅뚜벅 걸어간 흔적을 보여주는 이 화석은 인류의 ‘걷기’를 담은 첫 기록이다. 걷기는 이처럼 처음엔 사람이 이동하는 수단이었다. 그런데 지금 걷기는 버스에서 내려 출근을 위해 회사로 걸어갈 때의 행위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됐고 걷기 자체가 목적인 시대가 됐다. 미국의 역사가인 리베카 솔닛은 ‘걷기의 역사’란 책에서 ‘걷는 것은 수단인 동시에 목적이며, 여행인 동시에 목적’이라 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걷기는 인간 문화의 하늘에 펼쳐진 별자리 중 하나이며, 이것을 이루는 세 별은 육체, 상상력, 드넓게 펼쳐진 세상’이라고 하며 걷기라는 행위를 더 높은 자리로 올려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걷기는 누구나 튼튼한 두 다리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일이기에 삶의 여유를 여행에서 찾는 요즘 도보 여행이 더욱 확산하고 있다. 2007년 제주올레길 개통 이후 일기 시작한 걷기 여행 붐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고 해도 될 정도로 보편적인 여행 형태가 됐다. 그 사이 전국에 수많은 걷기 코스가 대부분 지자체 주도로 조성됐다. 부산의 대표적인 트레킹 코스인 갈맷길도 오는 6월이면 조성10주년을 맞는다.

한때의 유행이라기에는 지금 우리나라에는 너무 많은 ‘길’이 새로 만들어졌다. 지자체마다 정부 지원을 받거나 자체 사업비로 지역 명소를 걷는 트레킹 코스를 만들었다. 한국관광공사의 걷기·자전거 여행 안내 사이트인 ‘두루누비’에는 제주올레, 지리산둘레길 등 전국 550여 개 트레킹 코스가 있다. 여기에 최근 부산에서 목포까지 남해안을 잇는 1463㎞에 이르는 남파랑길 90개 코스 개설 계획도 발표됐다. 길은 나날이 늘어나지만 그 양만큼 질이 따라가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사람의 발걸음이 이어지다가 자연스레 만들어진 길은 스스로 생명을 유지하지만 인위적으로 만든 길은 얼마나 정성들여 가꾸고 아끼느냐에 따라 길의 상태와 수명이 달라지기에 관리에 더 큰 관심을 쏟아야 한다.

올해 초 찾은 영도 갈맷길 구간 중 보이는 망가진 이정표는 조성 후 지난 10년 세월을 보여준다. 바닷가라 더 혹독한 환경 탓에 방향과 거리 표시가 버티질 못하고 사라진 채 기둥만 비스듬히 서서 갈맷길 구간임을 알린다. 도로 구간이 많은 갈맷길 중 드물게 바다라는 부산의 특징적 풍광을 누릴 수 있는 대표적인 구간인 데도 길을 만들기만 하고 관리하지 않은 모양새다. 다른 지역의 길도 비슷한 예가 많다. 이런 점에서 최근 방문한 일본 미야기올레는 참고할 만한 점이 있다. 2011년 대지진을 겪고 지난해 가을 치유의 길로 탄생한 미야기올레는 지속해서 이뤄지는 관리와 주민 참여가 돋보인다. 갓 만들어졌지만 길 자체는 묵은 마을 길과 옛길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 덱 탐방로는 물론 안전시설조차 꼭 필요한 만큼만 만든, 길의 원형을 최대한 지키려 한 노력이 보인다.

그 길에서 드물지 않게 보이는 게 우드 칩이다. 길의 상태를 지속해서 점검해 미끄러운 구간을 우드 칩으로 덮는 것이다. 인상적인 건 이 우드 칩을 만드는 목재 분쇄기를 주민이 모금해 사서 기증했다는 것이다. 주민은 개장식 때도 자발적으로 나서 도보 여행객들에게 따뜻한 차와 음식을 제공했다. 주민이 길의 운영에 적극 참여하고 지자체는 주민의 도움을 받아 지속해서 길의 상태를 최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개장 6개월밖에 되지 않은 길의 미래를 예단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나라의 길이 가야 할 하나의 방향을 보여주는 듯하다.
지자체가 공들여 만든 길이 관광객들만을 위한 길은 아니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미야기올레도 관광객 증대 목적이 크지만 한편으로 주민 참여와 치유의 정신이 돋보인다. 길은 주민의 삶과 함께한다는 걸, 또 길은 만들기에 공들인 만큼 유지하고 가꾸는 데 정성을 쏟아야 한다는 걸 모두가 새겼으면 한다.

편집국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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