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울산시 울주군 대곡리에서는 정월 대보름을 맞아 달집 태우기 행사가 열렸다. 늘 그러했듯이 온 집안에 두루 평안이 깃들게 해달라는 주민들의 기원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날 행사에서는 예년과 다른 축원문이 등장해 시선을 사로잡았다. 달집 주위를 둘러싼 깃대에는 반구대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도록 해달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1971년 12월 발견된 반구대 암각화는 울산 사람들의 자랑거리다. 너비 10m, 높이 4m 크기의 바위에 고래 거북 사슴 등이 새겨져 있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그린 200여 점의 그림은 표현력도 생생하다. 호랑이가 함정에 빠진 모습이 있는가 하면 교미를 하는 멧돼지, 작살 맞은 고래, 짐승을 쫓는 사냥꾼도 보인다.

신석기 말에서 청동기시대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반구대 암각화는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여서 1995년 국보 제285호로 지정됐다. 그러나 반구대 암각화 일부가 1965년 건설된 사연댐에 한 해 절반 정도 잠기는 바람에 훼손이 가속화되는 실정이다. 울산 시민들이 대대적인 보존 운동을 벌이고 있는 이유다.

문제는 반구대 암각화를 지키는 일이 생각처럼 만만하지가 않다는 점이다. 사연댐이 지역의 식수원 역할을 해 무턱대고 댐 수위를 낮출 수 없는 까닭이다. 그 대안으로 생태 제방 축조나 고강도 투명막 설치, 암각화를 아예 떼어내 따로 보존하자는 의견 등이 쏟아져 나왔지만 현실성 부족으로 채택되지 못했다. 오히려 주민들의 갈등만 부추기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보다 못한 울산 시민들이 이번에는 ‘반구대 시민댐’ 건설을 내세우고 나섰다. 반구대포럼이라는 시민단체는 최근 100만 명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실제 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물 사용량을 평소보다 10%가량 줄이자는 것이 목표다. 이렇게 되면 식수로 소비될 5만 t가량의 물을 아껴 결론적으로 사연댐 수위를 자연스럽게 낮출 수 있다는 논리다. 시민단체는 또 홍보물을 만들어 전 국민의 지지를 끌어낸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들의 노력이 어떤 성과를 이끌어낼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시민들이 물 절약 운동에 선뜻 동참할지도 의문이다. 그래도 민간의 힘으로 선사시대 유적을 지키겠다는 의지만은 박수를 받아도 마땅할 듯하다. 문화재는 한 번 훼손되면 그것으로 끝이다. 주민들이 정월 대보름날 한마음으로 갈구한 소원이 이번만큼은 꼭 이뤄졌으면 한다.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