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가 부산을 ‘통째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이른바 ‘부산 대개조 프로젝트’다. ‘연결·혁신·균형’이란 세 가지 키워드로 대한민국의 도시 미래에 획기적 비전을 제시하겠다는 야심찬 추진 계획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달 사상구의 한 폐공장에서 열린 선포식은 여러모로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와닿는 게 별로 없었다.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고 할까. ‘대개조’의 내용이 동남권 관문공항, 사상~해운대 대심도, 경부선 철로 지하화, 스마트시티 등 그동안 줄곧 지역현안으로 거론돼온 것들이다. 게다가 토목사업이 대부분이다. 늘 식탁에 오르던 정책 매뉴를 살짝 데쳐서 다시 올려놓은 격이다. 새로움이 없다.

‘개조(改造)’는 ‘조직이나 구조를 고쳐 다시 만든다’는 뜻이다. 여기에 ‘대(大)’자를 붙였다면, 뭔가 획기적이고 보다 담대한,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한 방’이 있어야 했다.

가령 부산을 ‘도시국가’로 만든다든가, 연방제 수준의 분권을 추진한다든가, 도로를 획기적으로 다이어트한다는 것 등 말이다. ‘부산 대개조’의 본령에 시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보행혁신도시’가 결합되지 않은 건 의외다. 알맹이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부산 대개조론’의 원조는 국회의원을 지낸 권철현 전 주일대사다.

그는 1990년대 중반 부산발전연구소를 운영하며 ‘지방이여 깨어나라’라는 책을 펴냈고, ‘부산 대개조론’(2006년) ‘신부산 대개조론’(2014년)을 통해 부산발전 전략을 치밀하게 제시했다. 책 속에는 가덕도 신공항과 유라시아 철도, 낙동강 시대, 건강한 녹색 문화도시 같은 중요한 이슈들이 다뤄져 있다. 이 분야의 선구적 연구인 셈이다.

권 전 대사가 제시한 ‘녹색 문화도시’는 보행도시에 다름 아니다. ‘보행혁신도시’가 ‘부산 대개조’를 견인하는 핵심 실행 전략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두 가지는 자기 주장만 할 뿐 융합·통합되지 못하고 따로 노는 모습이다. 같은 재료를 갖고도 맛없는 요리를 했다고 할까. 정책 스토리텔링의 전략 부족이다.

과제는 명확해졌다. 명실공히 워커블 시티(Walkable city), 즉 걸어다닐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조직과 구조는 어느 정도 갖추어졌다. 예산이 없어 일 못한다는 말도 못하게 됐다. 부산시는 2022년까지 보행도시에 1조837억 원을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시에 ‘걷기좋은도시 추진단’이 만들어졌고, 보행권 확보 시민모임, 걷는 도시 워킹그룹 등 전문가 그룹이 가동되고 있다. 부산연구원에서 ‘보행도시 마스터플랜’ 용역도 시작했다. 오거돈 시장이 앞장 서 걸으며 진두 지휘하는 모습도 기대를 갖게 한다.

이 정도면 방향을 잘 잡았다고 할 수 있으나 걱정이 없지도 않다. 의지나 의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책의 ‘핀(pin)’과 ‘촉(觸)’이다. 핀은 초점이고 촉은 감동이다. 핀과 촉이 맞지 않으면 정책이 겉돌게 된다.

부산을 ‘통째로’ 바꾸려면 자동차·도로·토목 중심에서 사람·인도(人道)·문화 중심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실로 난제요 난관이다. 공무원들은 사실 보도블록 관리지침 하나 바꾸는 것조차 난감해한다. 혁신을 말하면서 보수를 고집한다. 보행도시를 강조하면서 토목사업에 치중하는 게 공무원들의 사고 체계이다.

워커블 시티는 세계 모든 도시에게 지상 목표다. 그만큼 어려운 과제다. 그동안 몰라서 안 한 게 아니라, 워낙 복잡하고 어려워 손을 대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부산시도 10여 년 전부터 추진해오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정책의 핀과 촉이 선명해지고 정교해져야 함은 물론이다. 멀리 가려면 방향을 맞춰 같이, 함께 가야 한다.

미국의 저명한 도시 계획가인 제프 스펙(Jeff Speck)은 ‘워커블 시티’(마티)라는 책에서 “워커블 시티는 유용하고, 안전하며, 편안하고, 흥미로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4가지 조건을 갖추려면 도시 혁신을 넘어서는 마인드, 그야말로 부산 대개조의 정신으로 다가가야 한다. 제프 스펙은 이런 경고도 덧붙인다. “워크빌리티(walkability, 보행친화성)를 제공하지 못하는 도시는 경제 발전 기회를 잃을 것이다.”

스토리랩 수작 대표·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