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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보잉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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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를 점령하라.” 2011년 9월 17일, 미국 뉴욕 맨해튼에 1000여 명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시위자들은 1%의 최상류층이 대부분의 부를 소유한 채 나머지 99%를 지배하는 빈부 양극화 사회를 성토했다. 발단은 세계경제를 10년간 침체에 빠뜨린 투자은행 리만 브라더스의 파산. 미 정부는 리만 브라더스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비우량주택 담보대출)의 부실로 6130억 달러(660조 원)의 빚을 지고 쓰러지자 월가의 금융회사들을 살리기 위해 국민 혈세를 투입했다. 그러나 금융회사들은 되레 200억 달러를 보너스로 나눠 갖는 등 극심한 타락상을 보였다. 이에 반발한 미국인들이 거리로 나섰고, 시위는 전 세계 82개국의 900여 도시로 확산됐다. 세계경제의 주류 이념인 ‘신자유주의’의 허구성이 여실히 드러난 사건이었다.

신자유주의의 대표적 이론가인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자유경쟁을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인류가 고안한 가장 훌륭한 제도”라며 공평한 기회, 공정한 경쟁 보장과 함께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는 자유방임을 주창했다. 마가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이를 “사회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개별적인 남성과 여성만이 있을 뿐”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비현실적 이론에 불과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에서 보듯, 미국 중심의 세계경제 질서로 짜여진 신자유주의 체제는 경쟁의 공정성을 기대하기 힘든 약육강식의 밀림이기 때문이다.

보잉 사태에서도 이런 실상을 목격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 인도네시아 라이언에어의 보잉737 맥스8 여객기가 추락해 탑승자 189명 전원이 사망한 데 이어 지난 10일 에티오피아항공의 같은 여객기도 승객 157명 모두 숨지는 사고를 당하자 세계 40여 나라가 맥스 기종 운항을 중단하거나 영공 통과를 금지했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3일 오전까지 자신에게 100만 달러를 헌금한 보잉의 최고경영자 뮐렌버그를 “내 친구, 훌륭한 사람”이라며 운항 중단 명령을 주저했다. 기업 이익에 가려 사람 목숨이 위기로 내몰리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그랬던 트럼프 대통령이 13일 오후 “미국민과 모든 사람의 안전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라며 보잉737 맥스8, 맥스9 기종의 운항 중단을 지시했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여기서도 신자유주의의 허구성이 확인된다. 시장논리가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사람보다 소중할 순 없다는 진실 말이다. 보잉 사태가 남긴 교훈이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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