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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어쩌다 책으로 약장수처럼 살게 되었을까 /김이듬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3-14 19:41:12
  •  |  본지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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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의 호숫가는 신비하다. 수십 만 그루 나무가 있는 숲길을 모처럼 걸어보는 아침, 나는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될까 갸우뚱하며 주변을 둘러본다. 마스크를 낀 사람들이 지나간다. 미세먼지로 희뿌연 대기 중에도 꿈결처럼 산책하는 이들이 있고 생애 최초인 듯 움트는 수목들이 있다. 하지만 이 숲에는 한겨울밤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동사한 빈털터리의 벤치가 있고, 절망감으로 호수에 투신한 이가 늦도록 헤매었을 자작나무숲이 있다.

호숫가 책방으로 천천히 걸어가 문을 열고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하루 치의 책을 복용하지 않으면 삶의 의욕을 잃는 불치병이 있다. 그리고 어떤 바람을 가져보는 것이다. 문학이 일생을 바꾸고 불행에서 건질 수 있다면, 내가 타인의 호흡을 되살릴 수 있다면 하는.

과연 작은 책방이 동네에서 문학의 실험실, 문화운동의 장이 될 수 있을까? 국가 프로젝트 사업에 지원하여 용역이나 지원금을 받는다면 ‘독립책방’으로서의 정체성과 자율성, 자존감을 스스로 훼손하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고민과 질문들에 빠져있을 즈음이었다. 그러니까 재작년 늦가을 저녁 무렵, 어떤 사람이 지친 표정으로 책방 문을 밀고 들어왔다. 그의 머리카락에 작고 마른 나뭇잎이 붙어 있었다. 그는 꽤나 먼 거리에서 걸어왔다고 했다. 그가 책을 읽고 싶은데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할 때 우리는 마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평소처럼 내가 손님의 독서취향을 파악하고 서가에서 몇 권의 책을 꺼냈는데 그가 말했다. “제가 요즘 고민이 너무 많은데요. 상담 후에 제게 필요한 적당한 책을 추천해 주시겠어요?” 그는 인근의 아쿠아리움에서 근무하는 청년이었고 현재 생활부터 과거 학창시절과 어릴 적 얘기까지 털어놓았다. 두어 시간 줄곧 나는 듣는 입장이었다. 듣는 게 말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고 그의 고통과 슬픔, 위기의식이 내게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는 내가 권한 시집 두 권을 샀다. 그는 다소 밝고 평안해진 얼굴로 미소를 띠고 인사했다. 나는 쌀쌀하고 컴컴한 길을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책방으로 들어와 참담하면서도 아늑한 물고기가 되어 시를 썼다.



‘오늘처럼 인생이 싫은 날에도 나는 생각한다.실연한 사람에게 권할 책으로 뭐가 있을까/그가 푸른 바다거북이 곁에서 읽을 책을 달라고 했다//

오늘처럼 인생이 싫은 날에도 웃고/오늘처럼 돈이 필요한 날에도 나는 참는 동물이기 때문에/대형어류를 키우는 일이 직업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쳐다본다/최근에 그는 사람을 잃었다고 말한다/죽음을 앞둔 상어와 흑가오리에게 먹이를 주다가 읽을 책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사람들은 아무런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그들은 내가 헤엄치는 것을 논다고 말하며 손가락질한다//

해저터널로 들어온 아이들도 죽음을 앞둔 어른처럼 돈을 안다/유리벽을 두드리며 나를 깨운다//

나는 산호 사이를 헤엄쳐 주다가 모래 비탈면에 누워 사색한다/나는 몸통이 가는 편이고 무리 짓지 않는다/사라진 지느러미가 기억하는 움직임에 따라 쉬기도 한다/누가 가까이 와도 해치지 않는다//

사람들은 내 곁에서 책을 읽고오늘처럼 돈이 필요한 날에도 팔지 않는 책이 내게는 있다/궁핍하지만 대담하게/오늘처럼 인생이 싫은 날에도 자라고 있다//’(‘아쿠아리움’ 전문)

그날 이후, 나는 책을 매개로 인간을 사랑하는 천부적 재능을 갖고 싶어졌다. 쉽게 말하자면, 책 처방을 시작한 것이다. 그와의 대화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발명한 어떤 직분 같았다. 이처럼 책 처방사의 계기도 우연히 발생했다. 어릴 적, 내 심신이 책에 홀린 것처럼, 재작년 어느 날 갑자기 책방을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처럼, 운명처럼.
맞다. 몇 권의 책이 한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거나 직면한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는 없다. 어쩌면 책은 상처나 환부를 쓰다듬고 위로하며 덮는 게 아니라 적나라하게 까발려 첨예한 통증과 직면하게도 한다. 카프카의 말을 빌리자면 “책은 도끼다.” 우리의 굳어진 사고의 틀과 얼어붙은 감수성뿐만 아니라 병든 자기 내면을 내리치는 영혼의 연장이라는 말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가장 시급한 자기혁명의 일환으로 책 처방을 계속한다.

시인 · 책방이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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