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 28일 열렸던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을 지켜보며 자신의 존재 상태를 넘기 힘든 인간의 굴레를 다시 목도한다. 평화는 모두가 원하고 그 혜택을 누리게 되는 것이지만, 누군가는 그 평화를 원치 않을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평화는 보편적 가치이지만, 현실화될 땐 개별적인 모습으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평화는 어떤 ‘다른 우리들’에게 거부의 대상이 되는 딜레마가 존재한다. 우리는 같지만 다르기도 하다. 우리는 자신의 시대가 마중물로 만들어내는 의식과 관념의 산물들이며, 자신에게 돌아오는 유형·무형의 이익을 기대하는 존재다.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열어젖히는 북미 협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우리들’의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

하노이 북미협상에서 미국과 북한은 서로 ‘플러스α’를 요구했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의 상응조치로 제재 해제를, 미국은 영변 핵시설 폐기 이상의 조치를 요구했다고 알려졌다. 서로의 협상 전략과 목표가 수렴되는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은 양국이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고 신뢰를 형성하지 못한 때문이다. 작년 6월 싱가포르 회담 후 비핵화 실무협상에서 미국은 핵시설의 완전한 신고와 검증을 위한 ‘목록’을 요구했고, 북한은 미국에게 공격 타깃 리스트를 제공하는 거라 거부해왔다. 체제의 생존과 안전을 위해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한 북한에게,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과정은 이를 보상하는 충분한 조치가 필요하다. 반면 미국 입장에서 북한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은 늘 강하게 자리잡아 왔다.

미국이 현 트럼프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요구한 카드는 ‘선 비핵화 후 보상’ 이었다. 지난 1월 31일 실무협상 대표인 비건이 스탠퍼드 대학에서 북한의 단계적·동시적 타결 수용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을 때 하노이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그러나 협상 결렬 후 미국의 협상카드가 과거로 회귀했다는 점이 확인됐다. 강경파인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신뢰할 수 없는 북한과의 거래는 최대치의 비핵화 조치를 얻어내야 성공이라는 인식이 워싱턴에서 하나의 관성으로 굳게 자리 잡아 왔다. 작년 11월 록히드 마틴과 같은 군산복합체의 후원을 받는 싱크탱크 국제전략연구소(CSIS) 보고서와 뉴욕타임스 기사처럼 심지어 시간과 논리를 조작하는 가짜뉴스를 통해 ‘신뢰할 수 없는 북한’은 미국 내 여론에 만연해 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회담 직전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며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얻지 못한 상태의 제재 해제는 ‘나쁜 거래’라는 여론 압박에 시달렸고, 북한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코언 청문회는 덤이었다.

협상 결렬 후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에서 걸어나옴으로써 승리했다고 칭찬했다. 일본 아베 총리는 어떠했는가. 남북 및 북미 관계 개선이 초래할 수도 있는 ‘재팬 패싱’에 당황하면서 중·단거리 미사일, 납치사건 등을 협상테이블에 올리면서 북미협상을 복잡하게 만드는 외교를 해왔다. 북한의 위협 요인이 사라져 한반도 평화가 가져올 정치적 손실을 계산하면서 워싱턴 조야와 싱크탱크에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는 외교력을 총동원했다.

70년 냉전구조에서 깊숙이 자리 잡은 의식과 행동의 관성은 분명 존재한다. 한반도 평화를 만들고, 냉전구조를 깨뜨리는 것은 ‘다른 우리들’의 관성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하노이 정상회담이 훗날 세계사에서 1986년 10월 미소 양국의 레이캬비크 회담에 비견되기를 희망한다. 북미 양국 정상이 ‘다른 우리들’이 만드는 관성의 굴레를 뛰어넘기를 바란다. 당장 싱크탱크나 미디어는 인공위성 사진을 통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설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는 보도를 쏟아낸다. 한미 간 입장 차를 한미동맹의 심각한 균열로 과장하는 보도도 계속될 것이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과 한반도의 평화가 자신의 이해관계나 신념과 일치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다른 우리들’은 협상의 동력을 제거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진정 비핵화 비용을 치르고 경제발전을 원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정착시키며 재선에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다른 우리들’의 관성을 뛰어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부산대 정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