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겨울, 부산 촌놈이 난생처음 서울 생활을 할 무렵이었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그때는 서울 동네 길목마다 횟집이 한 주 걸러 하나씩 생겼다. 안주로 2만 원짜리 광어 한 접시를 시키면 장골 3, 4명이 소주 몇 병을 거뜬히 먹어 치울 정도로 양이 많았다. 회 먹을 기회가 드물었던 서울 촌놈들은 광어회를 싸게 먹을 정도로 세상이 좋아졌다며 즐거워했다.

그런데 부산의 싱싱한 회에 길들여진 부산 촌놈의 입맛에는 서울 횟집이 맞을 수 없었다. 수족관 물이 깨끗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경한다고 수송차에서 장시간 스트레스를 받은 광어의 식감이 좋을 리가 없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서울 골목 횟집을 가는 날이면 강소주를 먹을 각오를 했다. 지나고 난 뒤 안 사실이지만 그때는 광어 양식기술이 발전해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을 무렵이었다. 수족관 수송차 등 수송과 보관 기술도 발달하던 시기여서 서울 등 내륙에도 횟집이 급증했다.

지금 생각하면 광어는 이때부터 값싸고 흔한 ‘국민 횟감’이 됐다. 실제 광어는 1987년부터 양식이 시작됐고, 2001년 1만6425t에 불과하던 생산량은 불과 4년 만인 2005년 4만 t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후 우럭과 함께 우리나라 바닷물고기 전체 양식의 90%를 차지할 정도로 ‘흔한 횟감’이 됐다.

원래 광어는 참돔과 더불어 감칠맛과 향이 강한 흰 살 생선으로,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귀족 횟감이었다. 뼈와 내장을 제외한 순살의 비율은 50%에 육박할 정도로 높았다. 저탄수화물 저지방 고단백이라며 많이 먹는 닭가슴살과 단위당 단백질의 함량이 비슷하며, 칼로리는 낮아 다이어트에 좋은 생선이다. 특히 맛과 향을 중시하는 일본인에게 고급 횟감으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는 일본 등으로 매년 3000t 이상이 수출됐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한국산 양식 광어를 양식 어종 중 고급으로 치는 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광어는 이제 ‘귀족 횟감’은 고사하고 ‘국민 횟감’ 자리를 내놓아야 할 판이다. 입맛이 변화하면서 연어나 방어 등에 인기가 밀려 소비가 급감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생산량은 여전히 많아 지난달 제주산 광어의 평균 출하가격은 ㎏당 8604원으로, 1년 전 1만2369원보다 30.4%나 떨어졌다. 이는 마리당 생산원가 1만1000원보다 낮다. 급기야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소셜미디어에 “가급적 식사 때 광어회를 선택해달라”고 홍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광어의 신분 변화가 격세지감이다.

정순백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