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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트럼프에게 드리운 닉슨의 그림자 /이승렬

美, 회담 결렬은 의도적…재선 때 中 간 닉슨처럼 트럼프 평양행 가능성

실질적 비핵화 불발 시 대통령 탄핵 가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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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의 아쉬움과 여운이 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하노이 담판 결과를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이미 회담 전부터 결렬을 예감케하는 전조가 여러 차례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하노이로 출발하기 전부터 “서두르지 않겠다”라며 ‘군불’을 지폈다. 실제로 28일 오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단독 회담 모두 발언에서도 “시간은 많다”며 딴청을 피웠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는 김 위원장의 말은 일부러 못 들은 척 했다. ‘의도된 결렬’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의도됐다는 것은 그 다음 단계까지 치밀하게 준비돼 있다는 것과 다름 없어서다. 너무 쉽게 풀리기를 기대한 것부터 냉혹한 국제 외교전의 실상을 잠시 망각한 순진함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구촌 마지막 냉전의 매듭이라는 북미간 70년 실타래가 그렇게 쉽게 풀릴 리 만무하지 않겠는가.

미국과 적대시했던 국가들의 관계 회복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음도 물론이다. 베트남은 1975년 종전 이후 2년 만인 1977년부터 미국과 국교 수립에 나섰지만 1995년에 와서야 뜻을 이뤘다. 종전으로부터 20년 걸렸고, 1986년 개혁 개방정책인 ‘도이머이(doimoi)’를 천명하고도 무려 9년이 더 걸린 셈이다. 1961년 미국과 단교했던 쿠바는 1962년 핵전쟁 직전까지 가는 곡절 끝에 53년이 지난 2014년에야 국교를 회복했다. 미중 수교 과정은 또 어떤가. 마오쩌둥 주석은 한국전쟁 직후부터 저우언라이를 통해 관계 정상화를 위한 물밑 접촉에 나서지만, 양국 간 수교는 마오 주석 사후인 1979년에야 이뤄진다. 1971년 4월 ‘핑퐁외교’로부터 8년, 이듬해 2월 21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으로부터도 7년이나 걸렸다. 그 사이 ‘외교의 신’ 헨리 키신저를 비롯한 미국 측 ‘선수’들과 덩샤오핑 등 중국 수뇌부의 피 말리는 ‘밀당’이 있었다.

역사는 과거를 통해 오늘을 인식하고 미래를 비추게 하는 ‘거울’이다. 그래서 트럼프의 ‘이상 행동’이 별로 이상하지도 않다. 다음 행보가 보이기까지 한다. 그에게 드리워진 닉슨의 그림자가 매우 짙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공통분모는 시곗바늘을 50년 전으로 돌렸을 때 보인다. 1969년 초 출범한 닉슨 행정부는 그해 3월 중·소 국경분쟁을 계기로 중국과의 관계 변화에 나선다. 같은 해 펼쳐진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의 ‘동방정책’의 영향도 없지는 않았다. 마오 주석도 친소련 일변도 노선에서 탈피하기 위해 미국을 끌어들였다. 미중 양국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 맞아 떨어졌다. 닉슨은 ‘적성국’중국의 심장부인 베이징을 전격 방문, 미중 데탕트를 알리는 ‘상하이 공동성명’을 발표한다. 베이징 방문 시기는 차기 대선을 앞둔 1972년 초였고, 그해 선거에서 닉슨은 재선에 성공한다.

이를 현재의 트럼프와 대북 전략에 대입해 보면 공통점이 많다. 트럼프에게는 재선이 당면 과제다. 러시아 내통 혐의와 성추문 입막음 혐의 등으로 탄핵 위기인 그로선 사면초가를 벗어날 유일한 길이 재선에 성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돌파구가 없다. 그나마 희망을 걸 수 있는 것이 북한 비핵화 이슈다. 이렇게 소중한 ‘건수’를 현시점에 다 터뜨릴 정도로 ‘바보’가 아님은 자명하다. 3일(현지시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하노이 회담에서 김 위원장에게 생화학무기까지 포함한 빅딜 문서를 건넸다”고 밝힌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트럼프는 관례까지 깨면서 ‘애태우기 전략’을 펼쳤다. 당장 수용하기 힘든 제안을 한 후 파투가 나자, 대화의 끈은 이어가겠다고 했다. 주도권을 쥔 채 대선 시간표에 맞추겠다는 의미다.

이제 예상되는 이벤트는 트럼프의 평양행이다. 실무 협상 등으로 시간을 끈 후 내년 초쯤 전격적인 평양행을 선언할 수 있다. 베이징으로 들어간 닉슨과 같은 방식이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이 계산대로 움직여 줄지는 미지수다. 왕복 2만 리 열차 대장정을 마친 김 위원장은 결코 ‘빈손’으로 귀환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주도권을 쥘 수도 있게 됐다. 시간이 미국 대선에 가까워질수록 초조한 쪽은 트럼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향후 트럼프가 평양행을 선언했을 때 그간의 제재 유지 등을 견디며 힘겹게 버티던 김 위원장이 거부하면 어떻게 될까?

트럼프의 낙선, 또는 탄핵 가능성이 적지 않다. 게다가 김 위원장이 트럼프가 아닌 미국 대통령과 실질적 비핵화를 이룬다면 ‘하노이 굴욕’을 안겼던 트럼프에게 보기 좋게 ‘설욕’을 하는 셈이 된다. 실제로 간과해선 안 될 것은 김 위원장이 트럼프의 저서 ‘협상의 기술’을 이미 탐독했다는 사실이다. ‘지피지기’를 실천할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과거 닉슨도 재선에는 성공하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위기에 몰렸다가 하야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래저래 닉슨의 짙은 그림자가 트럼프를 덮고 있다.

편집부국장 bungs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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