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한 건축가는 집을 짓고 싶어 찾아오는 건축주에게 반드시 숙제를 내어준다고 한다. 피터 줌터(Peter Zumthor)의 ‘분위기(Atmosphere)’라는 책을 읽고 본인이 정말로 원하는 공간이 무엇인지 생각을 정리해오라는 것이다. 이는 좋은 집을 짓기 위해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사람이 첫인상을 중요시 여기듯 건축도 마찬가지다. 처음 봤을 때의 느낌, 그 분위기가 감동과 연결된다. 분위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고유의 매력이 있을 때 비로소 그 빛을 발한다. 분위기 있는 집을 만들기 위해서는 건축주가 명확한 주관을 가지고 제대로 된 주문을 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본인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설명해낸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부산이라는 도시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누구나 쾌적하고 멋진 환경에서 살아가길 원한다. 하지만 집이 주거의 개념에서 재산 증식의 개념으로 바뀌게 되면 문제가 달라진다. 재개발·재건축이 자본의 원리에는 부합할지 모르나 원주민을 쫓아내고 투기를 부추긴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들은 다들 자신의 형편에 맞게 살아간다. 집을 짓게 되었을 때 집이 지어지게 될 땅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집이 담기게 될 동네를 함께 볼 줄 아는 것이 도시에 대한 관심이고 애정의 시작이다. 기존의 것을 유지하면서 조금씩 개선하는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도시를 충분히 이해하고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부산에는 ‘부산건축제’라는 축제가 있다. 부산시와 부산지역 건축단체들이 뜻을 모아 2001년 만든 전문조직이자 행사이다. 우리나라 대부분 도시는 서울에 ‘최초’와 ‘최고’의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지만 건축제는 다르다. 부산건축제는 건축제로서는 전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간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다듬어져, 이제는 다른 도시에서 벤치마킹을 할 만큼 최고를 자부한다.

부산건축제 초기에는 도시와 건축에 관한 전시와 건축설계 공모전, 국제학술행사를 위주로 진행했다. 그동안 전문가들만의 축제라는 한계와 수차례 맞닥뜨리게 되면서 점차 시민에게 열린 조직으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소외계층의 주거나 공공시설물을 개·보수하고 도심 내 유휴지에 도시놀이터 만들기 등과 같은 실행 프로젝트는 일상 속에서 건축이 만들어내는 변화를 체감할 수 있게 했다. 시민이 도시와 건축을 바라보는 안목을 기를 수 있도록 건축문화해설사를 양성하여 건축투어를 운영하거나 공간문화를 다루는 팟캐스트를 기획하기도 하고, 건축문화 아카데미를 개설하여 운영하기도 한다.

올해 부산건축제는 ‘건축, 소소함의 발견’을 주제로 내걸었다. 오는 9월 F1963에서 열릴 전시행사에서도 ‘집’ ‘골목’과 같은 일상 속 공간을 이야기할 예정이다. 작지만 잘 닦여지고 다듬어진 것이 모여 하나의 큰 가치를 이루어낸다. 작은 가치의 힘에 주목한 것이다. 개개인의 확고한 철학을 담고 주변과 조화롭게 지어진 집이 모여 건강한 도시를 이루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내년이면 부산건축제가 20주년을 맞이한다. 부산시는 새로운 시장이 취임하면서 당연직으로 맡고 있었던 조직위원장직을 민간에 이양한다고 발표했다. 성년을 맞은 부산건축제가 진정한 독립의 기회를 얻게 된 셈이다.

지난주에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을 방문해 스마트시티 건설을 선언했고, 부산시에서는 부산의 도시건축정책 방향을 주도해 나갈 총괄건축가를 위촉했다. 도시와 건축에 대한 정부와 시의 관심과 지원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부산건축제는 독립이라는 과제를 새로운 기회로 삼아 부산과 부산건축을 풍요롭게 하는 그간의 역할에 시민의 공감을 더욱 이끌어내야 한다. 그리하여 시민의 관심과 참여를 원동력으로 부산이라는 도시공간의 ‘분위기’를 최대한 이끌어내는 진정성을 가진 힘 있는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길 바란다.

㈜상지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