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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농기구판 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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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이야기다. 선생님께서 우리나라가 가진 게 얼마나 없었으면 물 좋고 산 좋다고 했겠느냐고 말했다. 자원은 빈약한데 사람이 많으니 열심히 공부해서 나라의 중요한 자원이 돼라는 뜻에서 한 말이다. 하지만 이는 한동안 민족적 열등감을 갖게 했다. 물려받은 자원이 없으니 가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콤플렉스는 대학 입학 후에야 비로소 떨쳐 버릴 수 있었다. 생활 곳곳에 스며 있는 선조들의 슬기로움은 주변 환경과 무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북 영주의 한 대장간에서 만든 호미가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서 ‘대박’을 치고 있다는 소식에 떠올려본 옛 기억이다. 호미는 아마존 원예용품 ‘톱 10’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아마존 외에도 이베이 등 다른 해외 쇼핑몰에서도 팔리고 있다. 국내에서는 4000원 정도인 호미는 해외에서 ‘혁명적 원예 용품’이라며 14.95~25달러(1만6000~2만8000원)에 팔린단다. 좀 튀겨 얘기하면 현대 서구 사회의 트렌트가 된 개인 정원 혹은 텃밭 쪽의 한류다. 유튜브 등에는 영어권 사람들이 호미를 정원 취미자의 필수도구라고 선전하는 영상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다. 명칭도 로마자로 homi라고 쓰고 발음도 ‘호미’라고 한다.

이번에 안 사실이지만 외국에는 삽만 있지 호미처럼 ‘ㄱ’자로 꺾어진 다목적 농기구가 없다. 그러니 호미의 편리함과 튼튼함에 놀라고 찬사가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 이처럼 우리만 호미를 사용하게 된 데는 자연환경의 영향이 크다. 미국이나 유럽은 농사를 지을 만한 평지가 풍부하므로 농작물 대량 재배에 특화된 농기구가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산악지대가 많고 농지가 좁아 소량재배 혹은 쉽게 휴대하거나 여성 아이 등 근력이 약한 사람이 사용하기 쉬운 농기구가 발달했다.

재미있는 것은 일제강점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일본 농업연구원들이 낙후된 조선의 농업 기술을 개선하려고 왔다가 호미나 조선낫 등 우리 전통 농기구의 효율성을 깨닫곤 오히려 당황했다고 한다. 농기구판 한류는 이때 이미 싹이 튼 셈이다.
그런데 정작 호미를 만드는 대장장이는 아마존이 뭔지도 몰랐다고 한다. 경북 영주에서 52년째 낫을 만드는 석노기 영주대장간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3년 전만 해도 팔려 봤자 열댓 개에 불과하던 호미가 지난해 2000개 넘게 판매됐다고 해 아마존에 간 여행객이 강가에서 쓰는 걸 누가 봤나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순백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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