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나무 아래에서 낮잠을 자던 토끼가 쿵하는 소리에 놀라 도망치기 시작한다.

“땅이 무너진다!”

이웃 동물들이 같이 도망치기 시작한다. 도망치는 동물들은 점점 불어나 큰 무리기 된다. 무리는 늙은 사자 옆을 지난다.

“무슨 일이냐?”

사자의 물음에 땅이 꺼지고 있다고 한다. 누가 봤느냐고 하니 누구에게 들었다며 몇 동물을 거치니 최초 발설자는 토끼였고, 토끼는 쿵 소리를 분명 들었다고 했다. 쿵 소리가 분명 땅 꺼지는 소리인지 확인해보자며 사과나무 아래로 가보니 그것은 사과가 떨어진 것이었다.



“이 여자를 어찌 하오리까?”

흥분한 군중은 예수에게 대답을 강요했다. 율법에 간음한 여자는 돌로 쳐 죽이는 것이다. 굳이 율법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그것은 당연했다. 그들은 아마 예수로부터 지극히 당연한 일에 지극히 당연함을 확인하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대답을 하지 않고 허리를 구부려 땅바닥에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군중들은 당연한 일에 무슨 뜸을 들이느냐고 재촉한다. 그래도 예수는 여전히 구부린 허리를 펴지 않는다. 꽤 시간이 지난다. 그 사이 돌을 꽉 움켜 쥔 손에 힘이 조금씩 풀린다. ‘쳐 죽여도 시원찮을 저 나쁜 년’에 대한 분노가 조금씩 가라앉는다. 분노가 가라앉으면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연약한 여자가 불쌍해진다.

‘저 여자가 왜 간음을 했을까….’ ‘무슨 사연이 있겠지….’

군중들의 마음이 조금은 복잡해진다.

그때 예수는 천천히 허리를 편다. 그리고 군중을 향해 소리친다.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돌로 저 여자를 쳐라!”

군중들이 하나 둘 돌을 놓고 돌아서 가버린다.



앞선 두 이야기는 ‘소격’에 관한 것이다.

극작가 브레히트가 말한 소격효과는 객관적 세계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비판적인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극적 환영을 깨뜨림으로써 무대 위의 사건에 대한 새롭고도 낯선 태도를 갖게 한다. 관객이 허구적 사건에 대해 거리감을 갖게 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이야기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이는 관객의 감정 이입을 막고 작품에 대한 냉철한 인식,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도록 종용하는 것이다. 좋은 연극은 관객을 몰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모순을 드러냄으로써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관객이 현실을 다시 생각할 수 있다.

이 이론에 의하면 예수는 아주 훌륭한 연출가다. 성난 군중들에게서 감정 대신에 이성을 자극시켜 현실을 다시 생각하고, 그들이 처한 모순을 깨닫게 했다. 그것은 간격을 확보함으로 몰입에서 빠져나와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게 한 것이다.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돌을 들고 간음한 여자를 찾아다닌다. 하여, 사회는 늘 시끄럽고 흥분되어 있으며, 어딘가 불안하다. 조그마한 일에도 온 나라가 냄비처럼 바글바글 끓는다. 이것은 분명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다. 몰입을 부추기는 연극이나 영화와 같다. 특히 정치가 그렇다. 지성인이라면 당연히 그런 현상에 선동되지 말아야 한다. 한 발만 빼고 바라보면 엉터리라는 것을 판단할 수 있는 일에도 멀쩡한 지성인들이 같이 휩쓸려 다닌다.

현실이 그러하니 영화는 한술 더 뜬다. 한술 더 뜨는 정도가 아니라 현실과 영화를 아예 같이 여겨버린다. 역사물의 경우 픽션의 세계가 사실의 역사로 둔갑해 버린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근현대사들 중 많은 부분이 그러한 함정에 빠져 있다. 내가 아는 어떤 역사 선생은 ‘역사는 사실보다 어떻게 보는가라는 사관(史觀)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목적이 좋으면 사실은 얼마든지 가공해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역사는 필요 없고 소설만 필요한 것이다. 굳이 학교에서 역사 공부를 할 이유가 없다. 명색 소설가인 내게 역사를 소설처럼 이야기하니 할 말이 없다. 나치 광기에 휩쓸렸던 독일의 지식인들이나 차베스에 동조했던 베네수엘라 지식인들은 뒤에 어떤 후회들을 했을까.

저마다 손에 돌을 들고 있는 우리에게 아니 우리 지식인에게 예수가 재림하지 않는다 해도 소격이 절실하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