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틴 헨리 레이야드는 1853년 3월 3일 런던 시의회로부터 자유훈장과 은으로 만든 화려한 상자를 부상으로 받았다. 그 상자에는 변호사이자 법학자이며 하원의원이었던 레이야드의 공로와 관련, “오래전에 사라졌던 동양의 유물을 발견하고 거룩한 역사의 정확함을 보여주기 위해 그것을 보전하며 또 그 때문에 이 나라는 이런 가치 있는 고대 유물을 영국박물관에 소장할 수 있게 되었다”고 쓰여 있다. 레이야드는 고고학자가 아니라 법률가이며 정치인이었는데, 이라크에서 근무하면서 세계 최초로 쿠윤직(Kouyunjik, 현대 도시 모쑬의 동쪽에 위치)을 발굴하여 이곳이 고대 도시 니느웨(Nineveh)라는 것을 알아냈고, 이로써 메소포타미아를 발견했으며, 성경에 기록된 거룩한 역사가 사실임을 증명했고, 발견한 유물들을 모두 싣고 영국으로 돌아와 영국박물관에 기증한 공로로 훈장을 받았다는 것이다.

고대 서아시아 문명사는 이렇게 성경에 관심을 가진 유럽 여행가에 의해 시작됐다. 제국주의 식민정책이 최고조에 달하던 시대, 영국 프랑스 독일이 경쟁적으로 이라크와 이란 유적지를 파헤쳤다. 지층분석이나 토기분석 등 전문적인 방법으로 진행하는 발굴은 20세기에 들어서야 가능해졌으며, 연구 초기에는 누가 먼저 유적지를 파내어 유물들을 세상에 드러내느냐 하는 데에 온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런데 레이야드의 훈장 문구를 뜯어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하나 있다. 이라크 사람들은 기원전 3000년 이전부터 문자문명을 발달시켰고 그 후로도 계속해 그 땅에 거주했으며 레이야드가 방문했던 당시에도 살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가 고대 서아시아 문명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묻혀 있던 유적을 바깥으로 드러냈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비전문가였던 레이야드에게 유적지 위치를 가르쳐 준 것은 대대로 그 땅에 살고 있었던 이라크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이라크 토착 거주민들은 고대 유적지를 발견할 수 없다는 전제가 있어야 레이야드에게 세계 최초로 고대 서아시아 문명을 발견했다는 영예를 수여할 수 있다. 이 관점에 따르면 서아시아 거주민과 그들의 문명은 유럽 사람들이 발견해주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과연 당시 이라크 주민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1852년 프랑스 사람 빅토르 플라스와 펠릭스 토마스는 호르싸바드(Khorsabad)를 발굴하여 신전과 지구라트와 성벽을 발견하고 상태가 좋은 유물들을 파리로 옮기려고 상자 235개에 담아 배로 옮기려 했다. 그러나 티그리스강을 따라 내려가던 중 지역 부족들의 공격을 받아 배가 침몰했고 귀중한 유물들은 모두 강바닥에 잠기고 말았다. 당시 이라크 거주민들이 제국의 유물 반출을 범죄로 간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레이야드가 서아시아를 여행하던 때보다 조금 후대에 우리 민족은 일본 제국주의를 경험했다. 그리고 똑같은 방법으로 유적지를 파괴하고 유물들을 일본으로 옮겨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가?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고 문화재 반환 운동을 하면 충분한 걸까? ‘조용한 아침의 나라’로 발견되고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나라로 발견되는데 익숙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려고 충분히 노력했을까?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국사를 배울 때 천편일률적으로 자랑스럽고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고 배웠지만, 외울 것만 많은 재미없는 과목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 이유는 학생이 주체적으로 역사를 발견하지 않고 역사 안에 묻혀 있는 자신을 발견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남이 발견해 주어야 비로소 내 가치가 증명되는 상황이 지속되고, 우리는 일상적으로 국내 최초 또는 세계 최고라는 찬사를 수여받기 위해 불철주야로 노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서 지난 역사 속에서 제국의 주인으로 살아 본 적이 없는 우리가 지배자로 군림하던 제국들이 물러간 지금도 그 이념에 순종하며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러고 보면 아직 제국이 완전히 물러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민족의 소원인 통일을 꿈꾸고, 한국 정부는 미국과 중국을 오가며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겠다는데, 관련된 협상들이 체결되는 모습은 여전히 제국주의 시대의 진행형 같은 느낌이 든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악의 축’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잔혹한 독재자’임을 발견했다가 갑자기 ‘아주 열려 있는 훌륭한 협상 상대자’라고 발견한 측은 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스스로 우리와 북한 동포들의 자리를 발견하지 않는 한 현재 상황은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다는 점과 우리는 역사 속에서 외부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발견 당하는 운명을 되풀이하게 될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

건국대 중동연구소 전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