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어제 검찰의 기소로 재판에 넘겨졌다. 전·현직을 통틀어 사법부 수장이 직무 관련 범죄혐의의 형사사건 피의자로 법정에 서는 것은 우리나라 사법부 71년 역사상 그가 처음이다. 앞서 그의 구속 수감과 아울러 우리 사법부의 최대 비극이자 치욕으로 기록될 만하다. 그러나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 사법정의 앞에 ‘지위고하’나 성역이 따로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기소 조치는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검찰이 낸 공소장을 보면 그의 혐의는 각종 재판 개입과 사법부 블랙리스트 작성, 비자금 조성 등과 관련해 무려 47개에 이른다. 그는 2011년 9월부터 6년간 대법원장으로 재임하며 임종헌(구속)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불구속 기소) 등에게 ‘재판 거래’ 등 반헌법적 구상을 보고받고 이를 승인하거나 직접 지시를 내린 혐의다. 양 전 대법원장이 이를 전면 부인한다고 해도, 사법 농단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돼 온 그를 보는 국민적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이번 기소로 8개월에 걸친 사법 농단 의혹 수사가 마무리된 모양새다. 하지만 땅에 떨어진 사법부 신뢰를 되찾는 일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수뇌부에 대해 법원이 한 점의 치우침 없이 엄정한 재판을 진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 같은 농단 의혹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사법개혁이 철저하게 이뤄져야 하는 건 말할 나위가 없다. 의혹에 연루된 전·현직 판사 100여 명, ‘재판 청탁’ 관련 전·현직 국회의원에 대해서도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 조치를 취해야 마땅하다.

사법개혁은 우리 사회의 시급한 과제임에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17년 말 본회의에서 구성안이 통과된 국회 사법개혁특위만 해도 가시적 성과는커녕 여야 정쟁으로 허송세월 하다 지난 연말 활동기한을 6개월 늘렸다. 올 들어서도 소위원회가 한 번 열렸을 뿐 전체적으로 난항을 겪는 모습이다. 이래서는 사법개혁이 제대로 될지 의문스럽다. 사법시스템이 국민 불신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해서는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사개특위의 대오각성과 조속한 사법개혁 추진을 촉구한다.